슥 2:1-13
스가랴는 학개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한창 성전공사 중이였고.
예루살렘 재건 운동에 열심이었다.
그렇기에. 측량줄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을 재서. 그 너비와 길이를 알아야겠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성전과 도성의 공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바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1) 예루살렘이 너무 번성해서.
예전/지금의 성벽으로는 두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2) 주님께서. "손수" 불성벽이 되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태평성대"이다.
그 주님이.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눈동자처럼 아끼는. 너희를 건드렸던 바벨론.
그 바벨론을 가만 두지 않겠다"
"그러니. 바벨론 도성에 살고 있는 시온 백성아.
<어서> 빠져 나와라. 그들은 곧 망할 것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안에 머물고 있던 당신의 백성 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향해서도.
구원의 손길을 펼치고 계신다.
그야말로. 전천후 활약을 이어가신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이 일어나셨다! 모든 사람은 주님 앞에 잠잠하여라!"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님이 이처럼. 열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러실까?"
"과연 그럴 필요/의무가 있으실까?"
"우리가 뭐가 예쁘다고..."
우리 안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주님이 이처럼 하시는 까닭은 단 하나.
당신의 소원 때문이다.
"내가 네 안에 머무르면서 살겠다/살고 싶다"
"내가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너희와 함께 살 것이다/살고 싶다"
"내가 네 안에 살면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드러내고 싶다"
문 좀 열어줄 수 있겠니?
얼마나 감사한가.
주님이 직접. 불 성벽이 되어 주시고.
주님이 직접. 우리 안에 머무르겠다고 하시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정말 그것을 원하는지.
되물어 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불성벽 되어 주시겠다는데.
우리는 그것을 기뻐하는가, 정말 원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집에 그처럼 오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기쁘게 문을 열어. 그를 맞이할 것인가?"
바라기는. 우리 공동체가 정말 그러했으면 좋겠다.
"주님. 오셔서. 내 맘에 거하여 주옵소서.
비록. 누추하고. 보잘 것 없지만.
주님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열어가며.
이 찬양을 나눈다.
(feat. 나의 맘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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