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2:6-16
인생을 살아가며.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될 때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하나님이.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까닭은.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마치. 욥의 3친구가. 자신의 경험과 신학에 비추어서.
이런 저런. 충고/조언/평가/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우리도 저마다. 자신만의 비망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좋게 보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마음/속 뜻을 알지 못하면서.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단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 삶을 돌아보면.
우리는 여전히. 판단자의 위치에 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일에. 자신의 생각/주장을 덧붙이고.
저마다. 이 일에 대한. 자신의 충/조/평/판을 날린다.
지혜자가 따로 없고. 재판장이 따로 없다.
인생의 모든 경륜과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서.
이 일에 담겨진 숨겨진 뜻과. 하나님의 비밀/경륜마저도.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로서는. 참 불편한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부끄럽진 않을까?
만약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면.
그 동안 뱉어놓은 말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이. 어쩜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행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나친 확신'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 곁에. 그다지 가고 싶지 않다.
그들의. 지나친 자신감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들은 나에 대해서도.
수많은 충/조/평/판을 날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마음만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생각은. 오롯이. 하나님의 성령만이 아실 수 있습니다(11절)"
그리고.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되물어 보는 것 같다.
"너희가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능통하고. 지식이 충만한데.
내 너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니가 언제. 내 마음에 들어와 본 적이 있느냐?
니가 언제.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와서. 나의 생각을 물어본 적이 있느냐?
내 마음에 들어와 머문 적도 한 번 없으면서.
어쩜 그렇게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것처럼 말하느냐?
어처구니가 없구나.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내 마음이나 깊이 살펴보면 좋겠구나.
너의 경험과 생각과 지식에 사로 잡힌 말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생각과 내 뜻을 들어보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구나.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간절한 바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함께 돌아본다.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너희는.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말하였건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그분의 음성 듣기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하나님은 한마디 밖에 안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을 넘겨 짚으며.
무수히 많은 말로. 하나님의 생각/마음을.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바라기는. 나와 우리 공동체가.
진정 하나님의 영에. 깊이 사로잡힌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부족한 나의 지식으로.
부족한 나의 경험으로. 크신 하나님을 끼워맞추려고 하지 않고.
크고도 깊은. 하나님의 지식/하나님의 부요함에 깊이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음성을 즐겨 듣는.
그런 우리가 되면 좋겠다.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머무는 우리가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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