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1:1-11
베드로 후서.
베드로 사도가. 이 편지를 쓸 무렵.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심각한 위험에 놓여 있었다.
그 당시. 거짓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거짓말이라고 가르쳤고.
그렇기 때문에. "니들이 그렇게. 오매불망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들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였다.
오히려. 지금을 즐기라고 말했다.
"니들만 왜 이렇게 바보 같이. 어리숙하게 손해보며 살아가냐?"며.
지금 당장 니 것을 챙기고. 자유롭게/즐겁게.
니 하고 싶은 대로. 니 마음대로 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 말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자신들의 믿음이. 폐급 취급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았을까?" 하는.
허망한 마음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누군가는. "나도 이제 내 갈 길 찾아갈거야!"라는 말을 내 뱉었고.
누군가는. 과연 어떤 말이 맞을까? 고민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기만 하였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초대 교회가 받을 수밖에 없었다.
거짓 사도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한 번 흔들어 놓고 떠나면. 그것으로 끝이겠지만.
교회는 계속된 여진과. 혼란스러운 마음 때문에.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내부 칼질하며. 서로 다투고 싸우고 있었다.
이것이. 베드로후서를 기록할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에 베드로 사도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여러분. 우리 주님 곧 오십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 분명히 오십니다.
그 날이 언제라고.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거짓 사도들의 가르침과 유혹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붙잡아서.
우리 주님께 뿌리를 내리고. 그 주님께 우리의 소망을 두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더욱"이라는 말을. 계속/반복적으로 쓰고 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써.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더욱> 열성을 다하여.
여러분의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성도의 우애를 <더하고>.
성도의 우애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우리가 어찌. 여기서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이 정도로 충분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집을 짓다가. 이대로 중도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기초만 놓고. 기둥만 세우고. 그렇게 골조만 짓고 난 다음에.
어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니 지은 것보다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여러분.
<더욱. 더 힘써>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야>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팽이가 계속 돌아야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자전거가. 계속 패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성도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곧 오실 것이며. 우리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더욱>이라는 말과. <더하고. 더하라>라는 말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오늘 내 삶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더욱 붙잡아야 할까?
사실은. 어떤 측면에서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왜 나만. 이렇게 쌔 빠지게 수고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느꼈던. 마음의 어려움과 고민들이.
어찌보면. 오늘 나의 고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도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경주를 마친 자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법이기 때문에.
지금 중도하차하고 돌아가면. 정말 아무 것도 안 되고.
그것이야 말로. 사단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오늘. 이 말씀을 따라. 주님 앞으로 더욱 나아가길 소원한다.
오늘 내가. 더욱 붙잡고. 굳게 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내 삶에. 더욱 채우고. 더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라기는. 오늘 하루. 내가 그 주님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예수의 십자가를. 더욱 붙드는. 그런 한날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을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
"주를 더욱 사랑. 아름다우신 주. 온맘 다해. 온힘 다해. 모두 드리리.
주를 더욱 사랑. 아름다우신 주. 온맘 다해. 온힘 다해. 주를 경배해.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이.
내 삶을 붙들고. 내 삶을 더욱 단단히 붙들어주길.
주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다.
(feat. 주를 더욱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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