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2:1-10
오늘 본문을 보면.
이단/거짓 가르침의 특징을 3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먼저는. 거짓 교사들이. 이단을 <몰래>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도둑이 집에 드는 것과 같다.
이 세상. 어느 도둑이. 대놓고 집에 들어가겠는가.
그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사람이 잠든 틈을 타서. 도둑질을 한다.
그래야. 들키지 않고. 마음껏 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단/거짓 가르침의 두번째 특징은. <그럴 듯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그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간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기꾼의 모습과 같다.
실제로 사기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얼마나 그럴 듯한 얘기로. 사람들을 꼬드기는가.
정말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그의 말대로 다 될 것만 같다.
사기는. 한 사람만 세치 혀를 잘 놀린다고 될 것이 아니다.
옆에서 바람잡는 사람들의 역할도 대단하다.
바람잡이들이 옆에서. "옳다쿠니" 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기면.
없던 욕망도 되살아나며. 자기도 모르게 혹~ 하고 빠져들기 마련이다.
3) 이단/거짓교사들의 마지막 특징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겁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일체의 양심의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속은 놈'이 바보지. '속인 사람'이 뭐가 잘못이냐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당당한 모습에. 오히려 우리가 화가 난다.
하지만. 어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내 돈 내놔!"라고 아무리 소리 쳐도. "다 썼다! 배 째라!"고 소리지르며.
미꾸라지처럼. 법의 울타리를 요리조리 빠져 나가서.
또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속여 한탕할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단/거짓 가르침/거짓 교사는.
도둑놈이요. 사기꾼이요. 또 파렴치한/뻔뻔한 놈들이다.
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근데. 이 일이 오늘 우리 교회/공동체 안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를 비방하는 사람이 어찌 이단일 수 있겠는가.
그는 대놓고. 자기를 자랑하고. 대놓고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 들어와 있는 거짓 가르침은.
그럴 듯한 말로. 우리를 현혹하는 것들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며.
"여기 좋은 투자처/길이 있으니까. 여기 한번 와보라"며.
우리를 꼬드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시대의 철학 사조와 세상의 문화를 들고 들어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성경의 가르침은. 점점 희석되기 마련이고.
처음에는. 분명 같은 곳에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성경의 가르침과 한참 멀어져 있는. 우리 자신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겁도 없이. 사람들을 비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복음이고. 내가 진리>인데. 뭐가 두려울 게 있단 말인가.
그렇게. 우리는. 이단/거짓 가르침/거짓 교사에 점점 물들어 가고.
거기 쇠뇌되기도 한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대의. 처참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나나 잘 하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특별히.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목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복음을 가르치고. 어떤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내가 전하는 복음 속에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을까?
혹시 나는. 이 세상의 풍조와 유혹에 현혹되어서.
나도 몰래. 그들 속에 물들어 가고. 길들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바라기는. 사도 바울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다른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내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분한 그런 인생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윗이 고백하였던 것처럼.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끝까지/곧바로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삼상 17:34-35)"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나의 삶이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부디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 내 마음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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