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1:12-18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1) 한쪽 편에서는. "어떡하냐?"는 반응이다.
"사도가 무슨 죄가 있다고? 사도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어째서 사도를 옥에 가두고. 그를 심문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 한켠으로. 사도를 걱정하면서.
동시에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감당하려 하였다.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으니. 우리가 더 힘을 내야 한다며.
좋은 마음으로. 책임을 나눠지는 마음으로.
그들은. 더욱 겁 없이. 확신 가운데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이. 첫번째 반응이었다.
2)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사도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쌤통이다!"라고 반응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사도가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 사뭇 못마땅했으며.
그래서. 시샘과 아니꼬운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었다.
근데. 사도가 갇혔다니…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샘통이라는 기분이 든다.
이제 내 주가를 올릴 때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겉으로는.
사도에 대해. 긍휼한 척. 불쌍한 마음을 표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제 내가 복음을 전할거야! 이제 내가 이 일을 주도할거야!"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첫번째 그룹에 있던 사람들이.
사도에게 두번째 그룹 사람들을 고발하였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얄미운지.
이 사람들이 얼마나 괴씸한지 토로하면서.
사도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소식을 들은. 사도의 반응이. 너무나 의연하다.
"어허. 그래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들이.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증거한다니.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다행입니다.
그들이 나를 비방하고. 시샘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그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됐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되어.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이 일에 참여하길 바랐었는데.
도리어. 그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내가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사실 제 마음이 많이 밟혔습니다.
근데. 그럴 일은 이제 없어 보이는구요.
물론. 그들이 더욱 좋은 마음으로.
이 일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불순한 마음으로. 경쟁심으로. 다툼과 시기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죠.
저는 그 시간을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다툼과 분열이 사라지고.
우리가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살아갈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그것을 기뻐하고. 앞으로도 기뻐하겠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향한. 저의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사도의 모습이. 마치 세례 요한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하며.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하여야 하리라"고 말하였던 세례 요한.
그렇기에 그는. 철저히 자기를 비우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가려고 할 때에도.
그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파송하였다.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어찌 서운함이 없었겠는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말을 듣고.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를 때.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가란다고 진짜 가냐? 이 나쁜 놈들!"이라는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세례 요한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파송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고.
나는. 오실 그분을 예비할 자이기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세례 요한과 같은 삶. 사도 바울과 같은 삶을 요청하신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높이고. 나를 주장하며. 나를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오직 우리 주님만 드러나고. 우리 주님만 높이고.
우리 주님만 주장하고. 우리 주님만 내세우는 삶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면. 정말 불 같이 화가 나고.
내가 섬기고 수고한 일을. 다른 사람이 몰라주면. 속상하고. 뭇내 서운하다.
그래서. 섭섭병이 찾아오고.
그 서운한 마음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깨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보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길 원하시는 것 같다.
세상이 너를 모른다 하여도. 내가 네 이름을 마음에 새겼으며.
세상이 너를 주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가 네 삶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치. 세례 요한을 가리켜.
"어머니의 뱃 속에서 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그렇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우리가 높아지면. 그가 낮추시리.
우리가 낮아지면. 그가 높이시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으로. 나 자신을 낮추는. 섬김으로"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마음에 가득 차고 넘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드린다.
(feat. 섬김)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빌립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06.24(금) 빌 2:19-30 (0) | 2022.06.24 |
---|---|
2022.06.23(목) 빌 2:12-18 (0) | 2022.06.23 |
2022.06.22(수) 빌 2:1-11 (0) | 2022.06.22 |
2022.06.21(화) 빌 1:19-30 (0) | 2022.06.21 |
2022.06.17(금) 빌 1:1-11 (0) | 2022.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