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18-25
사가랴는.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기쁘게/달게 받지 못하였다.
자기 처지가. 너무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지금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았는데. 앞으로. 무슨 수로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
그래서. 사가랴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또 미심쩍게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셨는지.
하나님이 왜 우리 가정에게 이런 은총을 베푸셨는지 묻고. 그분께 나아가기 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것을 외면하고. 애써 부인하려고 한 것이다.
그 결과. 사가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을. 사가랴가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사가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가랴 집안에. 은혜를 베푸신다.
사가랴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돌아보셔서.
<사람들에게 당하는 내 부끄러움을 없이해 주시던 날>에.
나에게 이런 일을 베풀어 주셨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보는데.
두 가지 포인트에서. 내 마음이 머물게 되는 것 같다.
1) 먼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사가랴는.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 의심하고 그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네가 이 약속을 믿지 못하였으니. 중도하차! 탈락!"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다.
근데. 이 일이 참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것이 많은가.
그래서. 때때로 우리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실망하고. 스스로 한탄할 때도 참 많이 있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하는 생각이 될 때도 있고.
"내가 무슨 목사야. 내가 무슨 간사야. 내가 무슨 집사야. 내가 무슨 장로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의 어떠함 때문에. 우리의 어떠함으로. 당신의 약속을 이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오늘 우리의 삶을 이어가신다.
그래서. 칼빈은.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 하였다.
오늘 우리는. 약하고.
오늘 우리는. 연약하고.
오늘 우리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아침. 말씀을 보며.
감사함과 찬양의 노래로. 먼저 주님 앞에 나아갈 따름이다.
2) 그리고. 말씀을 보며. 또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조용히/가만히> 주의 뜻이 이뤄지길 기다리는. 엘리사벳의 모습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사벳이 임신하고. 다섯 달 동안. 조용히 숨어지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모습이. 참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왜? 기쁜 소식/일을 겪게 되었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서. 이 소식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다섯 달 동안. 조용히/가만히 숨어 지내는 엘리사벳의 모습이.
좀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았었다.
"혹시 아이가 유산 될까봐? 괜히 불안하고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걸까?"
근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엘리사벳이. 그런 이유로 침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엘리사벳이. 침묵하며. 조용히. 가만히 숨어 지내며 있었던 걸까?
그것은. 그 때에. 때가 되면 이뤄질. 주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가브리엘 천사가 하는 말도 그렇지 않은가?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내 말>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엘리사벳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그 때가 되면. 다 이루어질 일>을.
왜 내가 먼저 나서서.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친단 말인가?
엘리사벳 입장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자기가 주목받고. 자기가 관심 때문에.
그렇게 하기 보다는. 조용히/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내가> 아이를 가졌다"고. 떠벌리고 다니기 보다는.
<조용히/가만히> 그 아이에게 집중하였다.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조용히/가만히> 집중하였고.
주님의 약속이. 오늘 우리에게 이뤄지고 실현되기를.
<조용히/가만히> 기다리며. 그 날을 기다린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참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때가 되면. 다 이뤄질 것"을 왜 우리가 떠들고 다닐 필요가 있겠는가.
"때가 되면. 다 이뤄질 것"을. 왜 우리가 의심하고. 그것을 불안해 하고 있겠는가.
"때가 되면. 다 드러날 것"을. 왜 우리가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를 주장하고 나니겠는가.
"때가 되면. 다 드러나고 나타날 것"을. 왜 우리가 좌불안석 하며. 걱정하고 다니겠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심판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의로운 재판장이 오시는 날에. 주께서 우리의 아픔/눈물을 닦아 주시고.
주께서. 우리의 부끄러움/수치를 물러가게 하실 것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조용히 앉아>.
주의 일하심이 드러나고. 주의 은혜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소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말씀을 묵상하며.
이 두 가지 말씀이. 내 마음에 많이 남는 것 같다.
1)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당신의 약속을 선하게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
2) 조용히/가만히 앉아. 주의 약속이 이뤄지길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엘리사벳.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 가운데도. 주님의 그런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며.
또 오늘 나의 모습도. 엘리사벳처럼.
주님 앞에서 그렇게 진실하고. 또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을 드린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하루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그때를. 그의 뜻 이뤄지리. 기다려.
주의 뜻 이뤄질 때. 우리들의 모든 것. 아름답게 변하리. 기다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님의 은혜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님의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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