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6:11-18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으니.
나는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그리스도만 높이려 합니다.
나는. 예수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니.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시고. 아무도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의 사람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이렇게 질문해 본다.
"나는. 오늘. 무엇을 자랑하고. 무엇을 높이고 있는가?
나는 오늘. 예수의 흔적을 지고.
예수와 함께 십자가 지기를 기뻐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분께 모든 짐을 떠넘기고. 나 혼자 기뻐하며. 나 혼자 안주하길 즐겨하고 있는가?
우리는.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자아를 죽이고.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 위에서. 당당히 소리를 지르고. 당당히/꼿꼿이 고개를 들고 있는가?"
많은 사람이.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높이는 시대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그다지 달게 여기지 않고. 그다지 기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사는 지를.
자기의 기쁨이요. 자기의 자랑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고난>이라는 말은.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그냥 편한대로. 그냥 익숙한대로 사면 되는 것이지.
왜 이렇게 유난을 떨고. 유별나게 사냐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새롭게 사는 길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니.
이전 것은 죽고. 이제는 새로운 것으로 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육체를 자랑하고. 육체 안에 살던 것을 버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높아지기를 바랐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죄와 허무의 사슬을 벗어던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산 피조물로서.
그에 합당한 삶.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게 된다.
"주님.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가 예수의 흔적을 지닌 사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가 예수와 동행하며. 예수와 함께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고난과 고통의 잔 앞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잔을 마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이 길을 걷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마지막 날.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주님의 말씀/음성을 듣게 하여주시고.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주님의 흔적/예수의 향기로.
가득한 우리 공동체 되고. 가득한 저의 삶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사.
자기 몸을 버리고.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예수로 사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갈라디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04.10(수) 갈 6:6-10 (0) | 2024.04.10 |
---|---|
2024.04.09(화) 갈 6:1-5 (0) | 2024.04.09 |
2024.04.06(토) 갈 5:22-26 (0) | 2024.04.06 |
2024.04.05(금) 갈 5:19-21 (0) | 2024.04.05 |
2024.04.04(목) 갈 5:16-18 (0) | 2024.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