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1-40

예수께서 태어나고 팔일이 되던 날.
예수와 그의 가족들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모세의 법에 따른. 정결 의식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고.
주께 드릴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둘을 가지고.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 그들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의 이름은. '시므온'인데.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5절)"

아니. 얼마나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았으면. 이렇게 기록할 수 있을까.
그는 정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진실한 자였나 보다.
자기 혼자만 구원을 받고. 개인의 경건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하였으며.
그렇게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위로를 받고. 평안을 누리길 바랐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하나 허락해 주시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네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이 약속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되는데.
"문제는. 그 그리스도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겠는가.
하루에도 수천명의 사람이 성전을 드나들고.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가는데.
그 가운데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올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 했겠는가.
그것은 정말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들은. '마카비(마카베오)'처럼.
이스라엘의 혁명을 이끌. 위대한 장군을 바랐을지도 모르고.
'다윗 왕'처럼 이스라엘을 이끌고 구원해 줄.
위대한 리더/스승을 구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루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때 성령께서 강하게 말씀하신다.
"이 아이가 바로. 네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라"고 말이다.

시므온 입장에서는 큰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그 아이라고? 도대체 뭘 보고?"
이 아이는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으나. 왠지 말구유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그 부모의 모습을 보니.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별로 볼품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우리가 기다리는 그리스도라고 말하니.
시므온에게 이 일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겠는가.

마치. 다윗을 처음 보던. 사무엘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다윗의 형들을 볼 때는. 기골이 장대하고. 뭔가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어린 다윗을 바라볼 때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계~"하는 마음이 드는.
그 마음 말이다.

그래서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바라보며.
"정말 이 사람이 정말 맞을까?" 하는. 순간적인 고민을 가졌지만.
이내 그 마음을 바로 잡고. 아기 예수를 안고 찬양하게 된다.
왜냐하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맞다"는. 분명한 확신과 사인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30절부터. 32절을 보면.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라고 하는데.
시므온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성령께서 그 위에 계시며.
늘 하나님의 감동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갔기 때문이다(25~27절).

어쩌다 한번.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어쩌다 한번. 우리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나님을 찾고. 매일 하나님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오늘도 우리 곁에.
<매일/생생히> 일어나고 있는데.
시므온은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졌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시므온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기뻐하며 주를 찬양할 수 있었다.


안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남편을 잃고 난 다음에. 오랜 세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섬기고 있었는데.
안나도 하나님의 강한 인도하심과 성령의 감동 아래.
아기 예수를 만나고 그를 찬양하게 된다.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마침 이 때에(38절)"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나. 해프닝이 아니었다.

안나가 <매일 같이>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찾았기에.
그렇기에 안나가.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으며.
안나의 생각과 마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마음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안나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그를 축복할 수 있었다.

시므온도 그렇다.
성령께서 그 위에 계시며.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이 때에> 예수의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으로 들어오는데.
이 모든 것은. 우연이나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그가 매일 같이 하나님 앞에 기다리고. 성령의 충만한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를 바라보며.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게도.
<매일의 영성>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Q.T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제일 자주하는 말이 뭐냐면?
"지겹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찌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샘솟듯 솟구쳐 나올 수 있겠는가.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미건조하게 다가올 때도 있고.
때로는 주의 말씀이. 답답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늘 이 땅 가운데. 죄와 슬픔과 상처의 역사가. 이렇게 반복되고 지속되고 있는데.
오늘 우리 주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막막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일 같이 주의 말씀 앞에 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서 어떻게 불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장 8절을 보면.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지 않겠는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어디서 불어올지 알지 못하고.
바람이 언제 불어오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불어올지 알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넋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는. '깨어 기다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뿐이다.
주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은혜를 주실 때.
그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간구하며. 주의 뜻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요행'을 바라며. '행운'을 구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매일 매일' 주의 음성 앞에 엎드리며. '매일 매일' 주의 은혜를 구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 주실 때에.
그 은혜를 붙잡고. 하나님 앞에 머물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유업을 구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갈등 속에 하루 하루.
선택이란 갈림길에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시간 속에.
매일 같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하루 종일.
동행하며 영원으로 이끄시는. 진실하신 아름다움 노래하리.

주의 얼굴을 구하는 이 자리. 반가운 주의 음성으로.
가물어 메마른 우리의 목마름을 채우고.
주의 나라를 구하는 이 곳은 영원한 주의 약속으로.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이 기뻐합니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매일 매일' 주의 은혜를 구하며.
'매일 매일' 주와 동행하는.
그런 복된 공동체. 그런 복된 주의 자녀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가길 원한다.

(feat. 매일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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