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1-20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를 다스리던 때에.
우리 주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다.
세상의 임금이 아이를 낳을 때면.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그를 주목하는데.
우리 주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는.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이. 호적을 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을 때.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차서. 그때 아이를 낳게 되는데.
성경의 그날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한다.
"(마리아가) 거기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참 초라하지 않은가.
세상의 임금이 태어날 때면. 많은 사람이 환호하고 그를 주목하는데.
오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는.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왜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측면에서 우리 주님의 오심은.
인간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참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일부러' 그렇게 태어나셨다.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다.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고 하는데.
오늘 우리 주님이.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아주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시고. 우리에게 오게 되시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모든 사람>에게 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힘 있는 사람/권세 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땅 가운데.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임을. 우리 주님이 말씀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주님의 태어나심이. '들판에 있던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처음 전해지게 되는데.
오늘 이것은 단순한 우연/해프닝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1장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보면.
하나 같이 같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은가.
1)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고통하고 멸시받던 자들에게.
주께서 아이를 주시고. 그 가정 가운데 기쁨을 주시며.
2) 400년 동안. 한번도 전해지지 않던. 약속의 말씀이.
마리아에게/미천한 종에게. 주의 말씀이 선포되며.
3) 오늘 본문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일용직 노동자에게 하나님 말씀이 선포된 것은.
단순한 우연/해프닝의 역사가 아니다.
누가는 일부러/의도적으로 이 말을 계속하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힘 있는 자. 가진 자. 권세있는 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땅 가운데. 소외받고 멸시받으며. 주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모두 주어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는. 다른 어떤 본문보다.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소외 받은 자들'에 관한 얘기를 많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약속의 나라' 주시기를 기뻐하고 소망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되기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 없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지만.
오늘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로.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혜로 받아주셨음을.
성경이 말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가운데 베풀어 주신.
우리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오늘 우리도 값없이 흘려보내고. 오늘 우리도 값없이 전할 수 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가난한 영혼 억눌린 영혼. 지극히 작은 영혼까지.
주의 사랑을 베풀리라. 아름다운 그 사랑을.
연약한 영혼. 절망한 영혼. 지극히 작은 영혼까지.
주의 사랑을 전하리라. 아름다운 그 사랑을.
그들 모두 우리 사랑 원하고 있네. 내 작은 사랑까지도.
주의 사랑 베풀 때. 주님 기뻐하시네. 우리를 축복하시네.
주님 사랑 그들에게 전하리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주님 사랑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온 세상에 가득히"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우리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 가운데. 주의 사랑을 전해시고. 주의 복음을 알게 하신.
우리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그런 하루.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가난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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