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1:1-22
에스더서는.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은. 페르시아(바사 제국)의 4번째 왕으로.
강력한 힘과 왕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본문에서 그 위엄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그는. 인도로부터 구스(에디오피아)까지. 127개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으며.
왕위에 오른지 3년 째는.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불러서. 왕앞에서 큰 잔치를 벌였다고 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180일. 자그마치 6달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이틀만 잔치를 벌려도. 수많은 사람이 투여되고. 재정이 소요되는데.
180일 동안 잔치를 한다는 게. 과연 상상도 할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잔치를 벌였다.
휘황찬란한 궁전에서. 금으로 만든 잔에다가 술을 마셨으며.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과 술들을 마주하며.
그들은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잔치의 노래를 불렀다.
아마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예물을 바치고. 선물을 드릴 때면.
그는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한 생각/착각을 하였을 것이며.
이 일로 인해 그는. 자기 생각에 도취되고. 자기 흥에 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아하수에로 왕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냐면? 그는 왕후 '와스디'인데.
그는 왕의 명령을 거절하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실제로 오늘 본문 10절과 11절을 보면.
"왕이 주흥이 일어나(술을 마시고 기분이 좋아져서).
왕후 와스디를 자기 앞에 데려오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황후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내가 얼마나 예쁜 사람과 사는지.
내가 얼마나 힘이 있는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왕후 와스디를 통해. 자랑하고. 주접 떨고 싶은 마음에. 왕후 와스디를 청하게 되는데.
이를 왕후 와스디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니가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왕의 명령을 무시하게 된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의 자리를 박탈하고.
이 일로 인해.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일벌백계>의 기회로 삼겠다고 말하는데.
참 안타깝고 어리석은 일이다.
왜.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운단 말인가.
왜 자기 집에서 일어난 일을. 전국 단위로 확산한단 말인가.
왜 자기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고. 엄한데다 화풀이 하는가.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을 보면.
어리석고 미련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게 오늘 우리의 인생인 것 같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며.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많은 권력/힘을 가지고.
인생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만큼. 많은 돈과 재산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의 결핍/한계를 마주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밖에서는 떵떵거리며. 자신의 힘을 자랑할 지 몰라도.
집에서는 가족 문제로 힘겨워하며. 쩔쩔매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밖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척.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다가도.
집에 오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외로움. 슬퍼서 혼자 훌쩍 훌쩍 할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자신의 인생을 가리기 위해서.
겉으로 짙은 화장을 하며.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식의 나약함과 초라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하고. 일부러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며.
"빛 좋은 개살구. 허울 뿐인 인생"이라는 평가를 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인생이 그런 것이다.
겉으로는 많은 것을 가지고.
아무런 문제도 없이.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소명을 알지 못한 체.
떵떵거리며. 슬피 우는 그의 인생이.
어찌 즐거운 인생/행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오늘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간절히 고대하고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부러워하고 선망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오늘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부요함과 세상의 즐거움을 자랑하는.
그런 껍질뿐인 공동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인생의 목적과 소명을 발견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내 안에 있는 헛헛함을 채우기 위해서.
헛된 곳에 마음을 두고. 헛된 것을 자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요함을 자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부와. 세상의 명예와. 세상의 자랑을 나의 면류관으로 삼는.
그런 어리석은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과. 그 부활의 영광을 자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빌립보서 3장 말씀이. 강하게 부딪혀 오는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빌 3:4-8)"
바라기는. 오늘 이 말씀이.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자랑/소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헛된 것을 꿈꾸고. 우리가 헛된 것을 자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아니하고.
예수의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예수의 생명을 자랑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서기 원한다.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는 막막함.
디딜 곳도 머물 곳도 쉴 곳도 없는 삶.
이 어둠 속 암흑 한 가운데를. 홀로 바라보시는 분.
아무도 없는 이 곳으로. 다가오시는 그 한 사람.
예수. 예수. 예수. 살리시는 분.
예수. 예수. 예수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예수로 사네. 그 힘으로 서네.
예수와 가네. 그의 길로 걷네.
그 안에서 보네. 그 영광을 보네.
예수로. 예수의 삶으로 사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예수로 사며. 예수로 서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feat. 예수로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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