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가정예배 예찬론자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현대인들의 삶의 리듬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직장인들은 바쁜 사회생활로 저녁을 잃어버렸습니다.
서로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은데,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배부른 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정예배를 꺼렸던 두 번째 이유는, 형식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다가,
가정예배 시간만 되면 한자리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린다는 게 위선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색했습니다. 낯설었습니다.
차라리 가족끼리 진솔한 대화 시간을 갖는 게 더 나아 보였습니다.
가정예배를 꺼렸던 세 번째 이유는, 가정예배 방식(형식)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험했던 가정예배의 틀 속에선 쌍방향의 소통을 갖기란 어려웠습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진실한 예배와 배움보다는 과제를 빨리 해치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정예배를 꺼렸고, 이것은 죽은 전통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지금은 매일 저녁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잃어버렸던 저녁 시간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누군가 밥을 지어서 먹여줬다면, 이제는 스스로 밥을 지어서 먹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예배가 멈추지 않고, 가물어 메마른 시대에 생수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어색하고, 낯설더군요.
하지만 매를 맞다 보니 맷집도 조금씩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색함보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는 좋은 문화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한 명씩 꼭 안아주며 ‘사랑합니다!’를 말할 때면 행복 바이러스가 솟아납니다.
‘목사님 가정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물으시는 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가정의 예배 방식은 매우 간단합니다.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10~15분 정도로 시간 또한 짧습니다.
성경을 읽고, 느낀 점을 서로 나누며,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솔직하게 물어봅니다.
가르치기보다는 듣는 데 집중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입술로 짧게 기도하고, 예배의 정점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것은 찬양하는 것입니다.
가족끼리 노래하고, 율동을 하니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누리고,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가정예배의 방식과 형식은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안에 잃어버렸던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회복해 가기를 기도합니다.
‘위기는 기회다’는 말처럼, 광야에 길을 만드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후히 주시며, 꾸짖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약 1:5).
추천 도서 - 오늘부터 다시 예배 (도널드 휘트니, 복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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