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5:1-10

<형제의 도리 됨>

1-4절/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성경은.
도가 지나쳐. 그 사람의 인격까지 말살하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주지 말 것을 경고한다.

"사람을 죽이는 법이 아니라, 살리는 법이기 때문이다."

실로. 유죄를 선고하고. 매를 맞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사람이 잘못에서 돌이켜 새 사림이 되기를 원함이며-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그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본문은. "형제의 도리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제 아무리 큰 잘못을 범했다 하더라도.
그는 우리의 형제이며,
지체들 앞에서 천히 여김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10절/
'계대결혼'도 같은 맥락에서 이어진다.

고대 사회에서. '과부'가 된다는 것은. 실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이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약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형제들이 있다.
버젓이 형수가 고통 가운데 놓여져 있는데.
남편의 형제들이. 그를 돌보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지 않을 경우.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와 수모를 겪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형제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집은.
'신 벗긴 자의 집안'이라 불리며.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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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두 본문은.
아주 대조적이면서도.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형제의 도리"를 다하라는 것이다.

잘못을 행했다 하더라도.
우리 공동체의 한 구성원(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내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한 구성원(가족)으로서 주어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의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돌아본다.

형제, 자매의 잘못에 대해서는 엄중한 눈을 가지면서.
동시에. 사랑의 눈을 져버리지는 않았는가?

지체들의 아픔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 생각하며.
멀리 방관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은. 극단의 두 모습을 그리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형제/자매의 도리'에 대해서.
잊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주님이 나를 깨우신 까닭도 이 때문일까?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 공동체와. 우리 사회의 아픔을.
주님께 간구하며.
당신의 자비를 구한다.


cf. 4절에 '곡식을 밟으면서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을.
짐승이라도 수고의 댓가를 지불해야 하며, 이를 유급 사역자의 한 모습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느닷없이 이 말씀이 그런 의미로 기록했다고 보기보다는.
1-3절 말씀과 연결해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곡식을 밟으며 타작하는 소 - 매를 맞으며. 죄의 값을 치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 그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사지를 잘라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측면에서. 4절은. 5-10절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기도 한다.

곡식을 밟으며 타작하는 소 - 사회적 약자로서. 사람들에게 홀대를 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 그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없애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신비하고. 심오한 말씀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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