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9:1-16
우리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이렇게 말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성경의 이야기를 잘 몰랐을 때는.
본디오 빌라도가. 정말 나쁜놈/악의 축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성경의 이야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떤 측면에선. 그가 참 불쌍하고.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봐도 그렇다.
그는 예수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잘못이 없다(요 18:38, 요 19:4, 6)'는 사실을 계속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사방에서 옥죄어 오며. 빌라도를 곤란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는다.
"못 박으시오. 못 박으시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6절)"
"우리에겐 율법이 있는데. 그는 율법에 따르면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7절)"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황제 폐하의 충신이 아닙니다.
황제의 명을 어기려고 하는 것입니까(12절)?"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그들의 손에 넘겨 주었다.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예수를 넘겨주며.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사형은 언도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말이.
조금은 부당하고. 매정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일말의 양심/죄책감이라도 가지고 있었는데.
왜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그 사람을 몰아 붙이는 것인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것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부조리함과 불의함을. 모두 통틀어 가리키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없애고 싶은 마음에.
모든 책임을 본디오 빌라도에게 전가하였다.
예수를 없애고는 싶지만. 자기 손에 피는 묻히기 싫고.
'손대지 않고. 코 풀고 싶은'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은. 빌라도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그는 예수께 죄가 없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난 군중의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자신의 양심을 팔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그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신경은. 이렇게 고백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예수는 죄가 없으셨지만.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며
예수는 죄가 없었지만.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며.
예수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에겐.
유대인들과 같은 이중적인 모습.
빌라도와 같은 부조리한 모습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권한은 누리고 싶고. 책임은 지고 싶지 않고.
내게 득이 되는 것은. 취하고 싶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버리고 싶고.
이것이 잘못 되었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유익과 생명을 위해서는. 이것을 나 몰라라 하며.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이 시간.
나의 잘못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다.
"주님. 내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주님. 내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의 죄가 나의 잘못이며.
그들의 연약함이. 나의 연약함입니다.
주님. 부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고.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통애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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