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21:15-22
오늘 본문을. 처음 보았을 때는.
'동역자/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 제일 먼저 생각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비새가. 위험에 놓인 다윗을 구출하면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임금님. 임금님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신데.
어찌하여 이 곳을 찾으십니까.
혹여라도. 여기서 당신이 죽으시면. 우리는 앞으로 어쩐단 말입니까.
왕이시여. 그러니 앞으로는 절대로 이곳을 찾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힘써 싸우고 지키겠습니다(17절)"
그런 측면에서.
아비새의 희생과 섬김이. 너무나 든든해 보였고.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는 다윗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우리 공동체도. 이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씀을 찬찬히 묵상하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 그 때는 하나(1)였는데. 지금은 넷(4)이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때. 이스라엘 안에서 골리앗과 맞서 싸웠던 사람이 몇이었는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 떨며. 아무도 골리앗과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근데. 그 때. 다윗이 나타났다.
다윗 혼자. 구척장신 골리앗과 맞서 싸웠으며.
다윗 혼자.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윗 혼자.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골리앗을 향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한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너무 놀라운 일 아닌가?
도대체 이스라엘 안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것은. 한 사람의 영향력/이야기 때문이었다.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 안에 변화가 시작되었고.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고. 쫄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비새가.
거인족의 자손인. 이스비브놉을 무찌를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습브개가.
거인족의 자손인. 삽을 쳐 죽일 수 있었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보고 배우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인플루언서(influencer)/선구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다고 할 때.
그 일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난항이 예상되는가?
주변 사람들은.
"괜히.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지 말라"며. 애써 말리기도 하며.
스스로도.
"과연 이게 될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며.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의구심을 떨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 길에 자기 혼자 서 있는 것 같고.
외롭고. 고단한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곳에 길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혼자인 것처럼 생각되었건만.
이제는 그 길을 따라오는. 무수한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운동이(movement)이 되기도 한다.
복음의 시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갈릴리 변방에서 시작된. 작은 몸짓/움직임에 불과할 거라 생각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2천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도 우리에게. 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 공동체의 모습도 그러하다.
1956년. 우리 공동체가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우리의 모습은.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전국적으로 많은 지방회와 캠퍼스에서 활동을 할 뿐만 아니라.
1만 5천명의 졸업생을 파송한. 나름 견실한 공동체가 되었다.
이것은.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냥. 저절로 어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자신의 삶을 드린.
진실한 선배들의 희생과 섬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믿음의 선배들의 본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 앞에. 거대한 파도가 놓여있다 한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우리는 그저. 조용히/말없이. 저 벽을 타고 오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싸움을 당당히 싸울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그렇게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고. 이뤄질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어떤 일이든.
처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홀로 이 길을 가는 것 또한 쉽지 않고.
나 혼자. 저 좁고 험한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서.
두렵고. 떨릴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성공과 안녕을 위해 살아갈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는 것도 쉽지 않고.
모두가. 빠른 속도로. 경쟁과 치열한 다툼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천천히/느리게 걸으며.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평화를 말하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 것/몫을 챙기며. 나를 위해 살 때.
내 것을 내어주는 것도 쉽지 않고.
다들. 자신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살아갈 때.
내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주님.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 따라가기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도리어.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의 길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더라도.
이것이야말로. 참된 지혜이며. 참된 생명임을. 담대히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과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향한. 사랑과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이땅 가운데. 수많은 예수의 제자를 만들어 내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수의 길을 걸으며.
담대히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던 것처럼.
다윗과 그 부하들이. 거인족의 자손들을 이겼던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만군의 하나님을 붙들고. 담대히 나아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걸음과 섬김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다음주부터. 여름수련회가 시작되는데.
이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하는 우리 간사님들을 기억해 주시고.
주께서 그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평안을 더해주시길 소원합니다.
하나가. 둘이 되며.
둘이 넷이 되는. 기적을 보게 하여 주시고.
이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편만하게 이뤄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의 삶을 주께 의탁드리며.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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