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6:29-17:7
아합은. 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다.
성경은 그의 모습을 가리켜.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가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앞질렀다(31절)"고 말할 정도다.
그러니. 얼마나 제 멋대로 살았겠는가.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내리막 길을 질주 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은. "차에 탄 사람이든. 차 밖에 서 있는 사람이든".
모두가 겁에 질려.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게. 아합 시대에.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신다.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는. 앞으로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렇게 몇 해 동안. 고생 고생. 개고생할 것입니다(왕상 17:1)"
하지만. 아합은. 엘리야의 이야기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은. 임박한 심판에 놓이게 되었다.
주님은. 하늘 문을 닫으사. 그곳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지났다(왕상 18:1).
이스라엘은 물 한방울 없이. 이슬 한방울 없이. 고생하며 살았을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
도무지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존재임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주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기 전까지.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깨닫지 못한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한 다음에야.
그제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뒤늦게 후회하며. 떠난 버스를 되돌려 보려고. 손짓 발짓 다 해보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게. 어리석은 인간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인생을 돌아본다.
"나는. 정말 주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있는가?"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나의 공로와 의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은혜임을 깨닫고 있는가?"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작은 시공간 속에서.
내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
그제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존재인가?"
말씀을 잃으며. 참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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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을 보다가. 한 단어/문장이. 내 마음 속에 더 들어왔다.
그것은. 17장 1절에 기록된.
"내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라는 문장이다.
처음에는. 이 말씀이.
"그래. 너 한 번 당해봐라.
니가 한 번 해보자는 것 같은데. 그래 함 해 보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거다"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책망인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읽다 보니.
이 말씀이. "성도의 역할/책임/권한"으로 들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입을 열 때까지. 앞으로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입을 열어 기도할 때. 그때 주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겠다는 것이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니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
니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는 권세를 주셨던 것처럼.
주님도 우리에게. "기도의 권세/기도의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에겐. "입을 열 수 있는 권한/능력/책임"이 있다.
이 땅의 죄와 이 땅의 완악함과. 이 땅의 고통과 이 땅의 눈물을 보고.
하나님께 엎드려 간구하며. 주님의 자비/은혜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다.
그것이. 성도/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역할이며.
그것이. 성도로서/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살아가는. 우리의 권한/능력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되물어 보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입을 열고 있는가?"
"우리는. 입을 열어. 주님께 간구하며.
이 땅에 주님의 자비/은혜가 흐르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실제로 우리가 이 땅의 죄와 완악함에 대해.
손가락질하고. 책망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
주님 앞에. '입을 열어. 간구하는 사람'이다.
주께서 이 땅에. 당신의 은혜/자비를 멈추게 하실 지라도.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이며.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은혜가 흐르기를 간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나와 우리 공동체를 다시 돌아본다.
"나는/우리는. 얼마나 입을 열고 있는가?"
"나는. 이 땅의 죄와 아픔과 고통을 바라보며. 얼마나 눈물로 간구하며.
주님의 자비/은혜가 흐르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혹시 우리의 입이 메말라 버려서. 말하는 법을 잊어 버리고.
소리 내어 우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나에 대한 생각/나의 필요와 나의 관심에만 마음을 둘 뿐.
이 땅을 향한 중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 아침. '소리 내어' 당신께 나아간다.
주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기시며.
이 땅 가운데.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하며 말이다.
그래서.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 생각난다.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하루.
우리의 기도가 멈추지 않고.
주께서 이 땅을 바라보시고. 주목해 달라고 간청하는 하루가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이 땅 가운데 흘러 넘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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