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6:12-25

아버지. 어머니를 여의고.
이삭은 적잖은 부담과 고민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흉년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 길을 떠나야 했으며.
이방 사람들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으며.
어떻게든 살 궁리를 찾기 위해서. 이리 저리 헤매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나그네로 이 땅을 살아가는. 불안한 이삭의 삶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러한 이삭을 잊지 않으셨다.
주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기억하사.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그가 하는 모든 일마다. 대박이 나게 하셨다.
농사를 지으면.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되었고.
가는 곳마다. 하는 일마다.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이것은. 이삭의 장사 수완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복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삭이 부모님을 여의고.
자기 곁에는. 자기를 돌봐줄 어느 누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그의 든든한 빽/후견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이삭이. 승승장구하며. 번듯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삭의 삶이. 결코 평탄했던 것은 아니다.
이삭이 잘 나가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으며.
어떻게든. 그를 방해하고. 몰아내려 하였다.
실제로 오늘 본문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1) 이삭이. 재산이 많아져서. 거부가 되게 되니.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Get out! 여기서 떠나가라"고 말하고.

2) 이삭이 다른 곳에 우물을 팠더니.
이번에는 그랄 사람들이. "Get out! 떠나라"고 말하고.

3) 이삭이. 다른 곳에. 우물을 팠더니.
이번에도. "Get out! 떠나라"고 말하고.

4) 그렇게 이삭은 주변부로. 주변부로 계속 밀려났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또 다시 우물을 판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시비를 걸어올까봐. 노심초사/두려운 마음이고.
이번에는. 제발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근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어느 누구도 그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삭은. 그렇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삭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 반. 기쁨 반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이제 우리가 여기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게 하여 주십시오.
그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계속 밀려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제 떠돌이 생활 하는 것 싫습니다.
이제 쫓겨 다니는 것도 싫고.
이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것도 싫습니다.
아버지 없는 서러움을 견디는 것도 싫고.
어머니 없는 외로움을 견디는 것도 싫습니다.

주님. 부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 평화롭게 살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우리의 지경을 넓혀 주시고.
주님. 우리로 하여금.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내 인생의 목자 되어 주시고.
주님. 내 인생의 영원한 소망되어 주십시오."


말씀을 읽으며. 이삭의 마음이 너무 공감이 된다.

실제로.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외곽으로 계속 계속 밀려난다.

누군가는. 든든한 빽/후견인이 없어서.
출발선에서 한참 밀려나서 경주를 뛰어야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텃세와 힘에 밀려서.
자신들의 능력과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외롭고. 고단할 때가 있다.
아무도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이 없는 것 같고.
나 혼자. 어떻게든. 아둥바둥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복을 준 것처럼.
너에게도 복을 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라.
네가 어딜 가든. 네가 무엇을 하든.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 너를 향한. 나의 약속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의 비방과 비난이 있으면 어떠한가.
오늘 우리 인생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또 밀려나면 어떠한가.
주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기억하시고.
주께서 오늘 우리 삶을 붙들어주시면.
그 하나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그렇기에. 이 아침. 이 찬양이 계속 마음 속에 맴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 숨 내실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가사처럼.
성령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친히 찾아오시며.
오늘 우리가. 그분 안에서. 주의 나라를 꿈꾸게 하시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우물을 파고.
주와 동행하며. 주와 더불어 살아가는. 오늘 한 날이 되길 기도한다.

오늘 하루. 그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성령이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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