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1편

시편 기자는.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또 기도한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말한다.

"주님. 저는. 주님 앞에서.
흠이 없는 마음으로. 깨끗하게 살렵니다.
불의한 일은. 눈 앞에 얼씬도 못하게 하렵니다.
거스르는 행위를 미워하고. 그런 일에는 집착하지 않겠습니다.
구부러진 생각을 멀리하고. 악한 일에는. 함께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주님 저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시편 기자의 고백이. 얼마나 인상적인가?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주께서. 나를 다스리고. 통제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오니.
주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 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주께서. 언제나. 자기를 가르치고.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는 것이다.


근데. 시편 기자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숨어서 이웃을 헐뜯는 자는. 침묵하게 만들고.
눈이 높고 오만한 자는. 그를 책망하고 심판하며.
꼼수와 속임수로 가득한 사람을. 고위 관직/중요한 자리에 두지 아니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그의 곁에 두어.
그로 하여금. 사랑과 공의로. 이 땅을 다스리게 하겠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그냥 나 홀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소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과 직분을 따라.
이 일을. 공정하게. 또 진실하게 다루겠다고 말한다.
만약. 내가 이 일을 바르게. 진실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역할/직분에 대한. '직무유기'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편 기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1) 하나는. 오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앞에서. 그분의 통치를 받는 것이며.
2) 또 다른 하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삶에 개입하여.
사랑과 진리로. 그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이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게 참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실제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오늘 우리가 제일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이 나를 가르치고. 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누가 나를 가르치려고 하면.
"니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고 하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옳은 얘기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고. 자기를 합리화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질서가 무너지고. 권위가 무너진다.
그 끝에는 하나님이 있고.
그래서. 변함이 없는 주의 말씀 앞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버팅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내려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의 삶에 개입하고 않고.
그냥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하게 살아가려 한다.
그 친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아무런 말도 건내지 않는다.
왜? 얘기를 하게 되면. 불편함만 더해지니까!
얘기를 해 봤자. 괜히 어색함만 더해지고.
서로 불편하고. 힘들어지니까.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적당히 살아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이다.

주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를 가르쳐야 할 것이며.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말씀 앞에. 그분의 다스림 앞에 있어야 할 것이다.

주의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권면 앞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며.
언제든지. 겸손히 듣고. 반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정이 필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 아니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요.
내가. 내 인생의. 모든 정답과 해답을 가진 사람이 아닌데.
우리가 어찌. 내 마음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수 있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오늘 시편 기자의 이 고백이.
나로 하여금. 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된다.

"주님. 언제 나에게 오시렵니까?
주님. 언제. 나에게 오시렵니까?"

시편 기자가. 주님 나에게 오셔서.
"당신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길을 보여주소서"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당신의 말씀으로 나를 가르치고.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훈육해 주시길 기도한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주의 다스림과 주의 통치가 있기를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며.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시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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