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7:7-10
오늘 본문을 보면.
MBTI상 "F"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받아들이기 힘든 본문이다.
왜냐하면. 주인의 행동이. 너무 매몰차고. 야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밭에서 일하다 온 종에게.
"수고했으니. 여기 와서 좀 쉬고. 밥을 먹으라"는 말보다.
"지금 당장 밥을 차리고. 일을 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내가. 먹고 마시고 쉬는 동안. 너는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그리고 난 다음에.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면.
그제서야 너도 밥을 먹으라는 말을 한다.
이 얼마나. 야박하고. 몹쓸 말인가.
아무리 종이라 하더라도. "친절한 말" 한마디는 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근데 참 재밌는 것은.
종이 한마디의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종의 모습이. 바보같고. 어리숙하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종의 모습을 보고.
"우리도 이 종처럼 살아가자"고 쉽게 말하긴 힘든 것 같다.
왜냐하면. 이것은. 예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종이라 하더라도. 그도 엄연히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는데.
우리가 어찌 그를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제일 처음 들었던 마음은.
"불편함"과. "불쾌한 마음"이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마치고 난 다음에.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저는 해야 할 바를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만약. 우리에게. 이와 같은 주인이 있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근데. 말씀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이것은 그 당시. 고대 군주들의 삶의 방식이었고.
우리 주님의 삶의 방식은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향해 하신 말씀이 그와 같지 않은가.
"내가 다시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내 사랑하는 자. 내가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라 부르겠다" 하셨는데.
어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학대하고. 야박하게 구시겠는가.
그는.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고.
정말 마음다해 그들을 사랑하고. 정말 마음다해 그들을 존중해 주셨다.
그렇기에. 주님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는 말씀을 들으셨고.
"백부장의 종"을 고치기 위해. 그 먼길을 행차하셨고.
"말고의 종"의 귀를 고치기 위해. 그의 몸을 직접 만져주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보고.
그분께로 더 깊이/많이 모여들었다.
그의 삶과 사역이. 그 당시 고대 군주/주인들과는 너무나 달랐고.
조금이라도. 그 곁에 머물고. 조금이라도 그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구약 성경에.
희년이 되면. 종이 자유를 얻고. 해방될 수 있었지만.
그 주인 곁에. 영원히 머무르고 싶어서.
귀를 뚫고. 영원히 종이 되고 싶다는. 선언/고백을 하였던 것처럼.
그 당시 많은 사람들/제자들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 머물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종이기 때문에.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가 있어서.
그래서 순종하고. 그래서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인이 너무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주인은. 세상의 주인과는 너무나 다른 분이시기 때문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분 곁에 머무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하며. 그의 길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도.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았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맡은 일들과. 역할들이 있는데.
그 앞에서. "하나님은 고약하신 분"
하나님은 인정머리도 없고. 야박하신 분이라는. 오해와 고정 관념 속에 살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님은 선하신 분. 주님은 의로우신 분"이라는.
바른 생각과. 바른 마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보면서.
"니가 해야 할 것을 했다"며. 매몰차게 우리를 대하시고. 냉정하게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더 귀한 것으로 네게 채워주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하면 좋겠고.
그 선하신 주님의 말씀 앞에서.
"나를 거둬주시고. 나를 받아주시니. 그것 하나로 충분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며.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나는 쓸모없는 종이라.
나는 그저 내가 해야할 바를 한 것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오늘 하루도.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함으로/기쁨으로 반응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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