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자. 사람들이 소리 높여 그를 맞이한다.
"호산나!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제 우리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된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목소리 높여 주를 맞이하였고.
자기들의 옷을 길에 펴고.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마치 로마 황제가. 성에 입성할 때. 백성들이 그를 맞이하였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와 같은 모습/방식으로.
반응하고. 주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정치적 메시아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해방되고. 다윗 시대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어떤 측면에선. 어리숙하고 미련하게 보인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쯤 하나님에 대해. 바른 깨달음과 앎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근데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이. 마냥 싫어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진짜배기/진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한다고. 옷을 벗는단 말인가.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그 잎사귀와 함께 길에 장식한단 말인가.
어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목소리 높여 주를 맞이하였고.
어느 누가 그를 향해. 뜨거운 눈물과 기도로.
그를 축복하고. 그를 맞이한단 말인가.
이것은. 이스라엘 영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 주님은. 그들의 열망을. 기쁘게 받으시고. 또 소중하고 아름답게 생각해 주셨다.
그들의 생각과 이해가. 조금 부족하긴 하더라도.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중심은.
하나도 부족함 없고. 오히려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마치. 시골 교회 어르신들의 모습과 같다.
배운 것 없고. 아는 것 없고. 하나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신학은 없다 하더라도.
우리 주님을 향해. 뜨거운 열망과 진심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백성들을 향해 뭐라 하지 않으셨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책망하지도 않으셨고.
"너희가 도대체 언제쯤 나의 길을 바르게 알게 될 것이냐?"고.
책망하거나 재촉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시며.
넉넉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성안에 들어오셨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우리 주님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두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1) 나는. 그분들 같은. 뜨거운 열망과 진실함을 가지고 있는가?
2)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바른 지식과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가?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바른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온전히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식과 지혜는 제한적이며.
우리의 깨달음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부분적이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내가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 그때 했던 설교를 보면. 얼마나 부끄럽고 민망한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을 때도 많고.
정말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었나 싶을 때도 많다.
근데. 그때 그런 나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고 회심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부족한 나의 설교를 통해. 당신이 일하셨고.
내가 개똥같이 말해도. 주님께서 찰떡같이 알아듣게 하셨다.
그때만 그러한가? 지금도 그러하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지식과 경험은. 너무나 제한적이고 부족하며.
아마도 시간이 지난 다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찾아올 것 같다.
근데. 이것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라. 평생의 일이다.
우리는 제한적으로 주님을 보고. 제한적으로 주님을 알 뿐인데.
어찌 우리가. 제자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부족함과. 그들의 모남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오늘 우리에게도. 그들과 같은 뜨거움/열망이 있는 지를 물어봐야 한다.
만약. 그런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들을 손가락질 하기에도 모자란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의 열심을 배우고. 그들의 진실함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그 위에.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앎을 가져야 하며.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깊어져가고. 물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본문 가운데 기록된. 우리 주님의 마음/그분의 부르심이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그들의 마음을 본받고. 그들의 마음을 배우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심/진실함이 살아있으면 좋겠고.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을 향한. 바른 깨달음과 배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너는 부족하고. 모자르다"고. 핀잔을 주며. 꾸짖는 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중심을 받아주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 위해 살리라"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께 손을 포개고. 주님께 발을 포개는.
진실한 공동체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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