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2:1-13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이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 말의 무게감은. 확 달라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사람은. 풍족한 가운데 있고.
어떤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주께 감사하세. 그는 선하시며. 인자함이 무궁함이로다"라고 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그 무게감은 확 달라진다는 것이다.
풍족한 사람이 이 말을 할 때면.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와 평강 때문에. 그것 때문에 주님을 찬양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이 고백을 할 때면.
"이 사람이 왜 이런 고백을 하는지" 묻고.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이 사람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고.
그의 마음/중심에는. 어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 울림이 굉장해진다.
이 사람의 고백과 진심에. 하나님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경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라.
"정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를 향한. 존경과 감탄의 마음까지 갖게 된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하더라도.
이 사람이 어떤 처지나 환경 가운데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다.
우리의 상황/환경(context)이.
그 내용물(contents)를. 훨씬 더 빛나고. 가치롭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오늘 옥 중에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그렇다.
그는. 로마 감옥 안에서. 디모데를 향한.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이 편지의 내용을 보면.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9절)"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말이. 단순히 말이 아니라. 그의 실존임을 고백하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고난을 받겠지만.
이것은 잠시일 뿐이며.
오늘 우리에게는. 영원한 상급/유업이 준비되어 있음을 아는 말이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 주와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주와 함께 참으면. 우리가 주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임을.
기억하고 또 소망하는 말이다(11-12절).
우리는 때때로 무너지고. 또 쓰러질 지라도.
주는 미쁘시고.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주께서 끝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실 것을.
확신하고. 약속하는 말이며(13절).
그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고 소망 가운데 살아갈 것을.
고백하고 다짐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실존과 진심을 담아. 디모데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고.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또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해라.
그리하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많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1-2절).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가. 자기 생활에 매이고. 거기 얽매여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입은 자이니.
우리를 부르신 분. 그분의 뜻과 상을 위해 달려가야 할 것이니라.
여기에는. 결코 꼼수나 술수가 통하지 아니한다.
주님은. 자신의 길을. 정직히 진실히 걸어온 자에게. 상을 내리는 분이시니.
네가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길 가운데. 바르게 정직히 살길 원한다.
그리하면. 주께서 너에게 상을 내리실 것이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렇기에. 너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여.
그 말씀 가운데 바로 서길 원한다.
우리 주님이.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만.
그가 사흘 만에. 다시 일어난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주께서. 하늘에 오르사. 지금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이 믿음 가운데 떠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 강하고. 또 담대해져라.
이것이 너를 향한. 나의 마지막 당부다!"
그러니. 이런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으며.
어찌 살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고백은. 그 누구보다. 진실하고 정직하였으며.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의 삶은. 그가 복음을 전하던 그 어느 때보다.
더 힘 있고. 위엄이 넘치는 것 같다.
그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있었기 때문이며.
우리 주님의 마음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흔들고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사도 바울의 삶과 고백을. 오늘 우리 마음에 심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는. 어떤 상황과 처지 가운데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으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어떤 고백과 진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그런 믿음과 그런 소망 가운데 살아가면 좋겠다.
하박국 선지자가.
"우리에게 무화과 나무가 없으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 나무에 소출이 없고. 논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 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 삶도. 하나님 앞에서 그랬으면 좋겠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멸망과 패망을 바라보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고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고백이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환경과 처지 때문에.
그래서 감사하고. 그것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그런 믿음을 넘어서.
오늘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가운데 거하며.
주의 은혜로 말미암아. 강해지고 담대해지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오늘 우리 삶의 진실한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예수 위해 산 것이라"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이.
나와 우리 공동체의 살아 있는 고백되길 원하며.
"오늘 우리가. 죄인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우리 삶의 진실한 노래되며.
오늘 우리 삶의 진실한 고백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더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디모데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11.16(토) 딤후 3:1-9 (0) | 2024.11.16 |
---|---|
2024.11.15(금) 딤후 2:14-26 (0) | 2024.11.15 |
2024.11.13(수) 딤후 1:9-18 (0) | 2024.11.13 |
2024.11.12(화) 딤후 1:1-8 (0) | 2024.11.12 |
2018.12.22(토) 딤후 2:8-13 (0) | 2019.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