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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11.26 :: 2019.11.26(화) 욘 4:1-4
  3. 2019.11.23 :: 2019.11.23(토) 욘 3:5-10

욘 4:5-11

요나의 변덕과 심술은. 정말 '국보급'이다.
그렇지 않은가?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자.
요나는. 성 동편으로 가서. 집을 짓고.
아예 자리를 잡았다.
"그 성읍이 어찌 되는가를 볼 셈이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니느웨 성을 노려보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을 노려보는 것이다.
"니가 죽든 내가 죽든" 담판을 보자는 식이다.
독기 오른 요나의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요나 머리 위에 놓인. 박넝쿨 때문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희희덕 거린다.
그리고. 하루 만에. 박넝쿨이 사라지니.
또 짜증을 낸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입이 걸걸하다.


그런 요나 곁에. 만약 내가 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말만 하지 말고. 정말 뒤지든지.. 왜 계속 그러냐?"고 싸우지 않았을까?

실제로.
- 니느웨로 가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 니느웨 성이 멀쩡한 걸 보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
- 햇볕을 쬐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말하는 요나를 보면서. 한 대 콕 쥐어박고 싶다.

어린 애도 아닌데. 변덕이 죽 끓듯 하고.
"죽어 버릴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요나.
"이 정도면 심각한 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향해.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어떻게든 요나를 설득하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가르치려 하신다.

하나님의 그런 모습에.
그야말로. "리스펙" 존경을 표한다.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도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다.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요나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어찌 이 사람들을 버릴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그 물음 앞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자기중심성"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변덕쟁이. 심술꾸러기" 같은 지체들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을까?

참 쉽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내가 어찌 그들을 아끼지 않겠느냐"
"너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니라"

그렇기에. 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과 달라'하는 특별한 자기 인식이 아니라.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겸손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긍휼"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긍휼이. 나를 붙들고.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 공동체를 붙들고.
하나님의 긍휼이. 이 땅을 붙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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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4:1-4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무너진다”는 소식에.
니느웨 사람들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멈추셨다.
그들의 진심어린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요나가 불같이 화를 낸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마음이 약해 빠져가지고.
하는 일이 늘 요 모양이지요.
대체 언제 니느웨를 심판할겁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입니까?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거둬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요나의 화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다.


말씀을 보며.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요나는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고. 속이 꼬인걸까?"
"어떻게 해야 요나의 마음이 풀렸을까?


그리고. 묵상을 하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요나는. "말로는".
하나님께 니느웨를 심판해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이 세상의 심판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인이 심판자가 되어서.
이미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했구나.

결국.
'심판자'는 하나님이 아닌 요나이며.
하나님은 '집행자/심부름센터'에 불과하구나.


그렇게 말씀을 보다보니. 무서웠다.
우리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심판자"의 위치에서.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길"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판자, 우리의 주관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내가" 재판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야 할 분이며.
내가 내린 결정을 수행할 "비서/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며.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되묻기 일쑤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나는.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서.
사랑의 눈으로 지체들을 바라보며.
배제가 아닌. 포용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길 기도한다.

내가 심판자이고, 하나님은 심부름꾼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며, 내가 심부름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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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3:5-10

요나는. 욥바에서 니느웨까지.
장장 900km를 달려왔다.

그리고. 니느웨에 도착한 첫 날.
그는 하루종일 니느웨성을 돌아다니며.
힘써. 큰소리로 외쳤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

속마음이야.
"내 얘기 듣지마! 니들은 망해야 돼!"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어찌되었건. 표면적으로는.
열심히(?) 사역을 수행하였다.
하나님과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니느웨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니느웨 왕부터. 모든 사람. 모든 짐승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리고 왕의 칙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키고.
힘이 있다고 휘두르던폭력을 그치라"

마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에 선포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처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사 55:7)"
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들의 목소리만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가짜 금식. 하나님이 싫어하는 금식이 아닌.
진심어린. 금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사 58:4-6).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받으셨다.
그들이 뉘우치는 것. 돌이키는 것을 보시고.
뜻을 돌이킨 것이다.


말씀을 보며.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사실.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고" 있다.

니느웨 왕이 칙서에 기록한 말처럼.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무엇이 참된 회개인지.
무엇이 진정한 변화의 열매인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주저한다.
적당히. 대충.
은근슬쩍. 발만 담구려 한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그럴 수도 없고.
거기에는. 어떠한 생명도. 어떠한 은혜도. 머무를 수 없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삶의 방향을 180도 돌이킨 것처럼.
우리에게도. 전적인 회심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내가. 삭개오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가 그 말씀을 듣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 모두의 삶에 이뤄지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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