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3:1-4
주님께서. "또다시" 말씀하신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너에게 한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다.
"하나님. 왜 이렇게 요나에게 '집착'하시나?
요나가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그냥 포기하시지.
왜 이처럼. 집요하게. 요나를 건드리시나?"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방식이다.
"요나도. 니느웨도. 우리 모두도"
어느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자녀/백성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 있는. 왜곡된 마음을 고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따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고집스런(?)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를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분의 손바닥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것 같아서.
무섭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추해지기 전에 / 몸으로 깨닫기 전에.
기쁨으로 / 자발적인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암튼. 그래서.
"프랜시스 톰슨"은.
하나님을 "천국의 사냥개"라고 불렀다.
오늘은. 그 시의 일부를 인용하며.
묵상을 마치려 한다.
우리를 추적해오시는. 천국의 사냥개 앞에.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있게 돌아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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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밤에도 낮에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수많은 세월 동안을.
나는 그에게서 도망쳤네, 내 마음 속의 미궁 같은 길로
슬픔 속에서도 그를 피해 숨었다네.
겉으로는 계속 웃었고
한 때 희망에 부풀어 오르기도 했었지만
이내 두려움의 골짜기 아래 거대한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쳐 버렸네
나를 따라오는, 추적해오는 그 힘찬 발소리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지지 않는 걸음걸이,
장엄한 긴박함으로, 한 목소리가 두드린다.
발소리 보다 더 긴박하게-
“네가 나를 배반하기에, 모든 것이 너를 배반한다.”
“가여워라, 너는 알지 못하는도다.
나 아니면, 오직 나 아니면 비천한 너를 누가 사랑해 주겠느냐?”
“내가 네게서 너의 모든 것을 가져감은
너를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네가 그 모든 것을 내 품에서 찾게 하려 함이었다.
네가 어린아이같은 생각으로 잃어버렸다
여긴 모든 것을 나는 내 집에 쌓아 두었노라.”
“일어나라. 내 손을 꼭 잡고 가자!”
내 곁에서 멈추네, 그 발자국 소리.
“아, 어리석고, 눈멀고, 연약한 자여,
내가 바로 네가 찾는 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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