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4:1-4

“40일이 지나면 니느웨 성이 무너진다”는 소식에.
니느웨 사람들은. 베 옷을 입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멈추셨다.
그들의 진심어린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번엔 요나가 불같이 화를 낸다.

“내 이럴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마음이 약해 빠져가지고.
하는 일이 늘 요 모양이지요.
대체 언제 니느웨를 심판할겁니까?
당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입니까?
이제는 제발 내 목숨을 거둬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거칠었는지.
요나의 화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다.


말씀을 보며. 이런 질문을 해 보았다.
"요나는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고. 속이 꼬인걸까?"
"어떻게 해야 요나의 마음이 풀렸을까?


그리고. 묵상을 하며. 이런 마음이 들었다.

요나는. "말로는".
하나님께 니느웨를 심판해 달라고 했지만.
'하나님이 세상의 심판자'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인이 심판자가 되어서.
이미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했구나.

결국.
'심판자'는 하나님이 아닌 요나이며.
하나님은 '집행자/심부름센터'에 불과하구나.


그렇게 말씀을 보다보니. 무서웠다.
우리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심판자"의 위치에서.
"내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길" 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판자, 우리의 주관자"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내가" 재판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서.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야 할 분이며.
내가 내린 결정을 수행할 "비서/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며.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되묻기 일쑤인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나는. "스스로 재판장"이 되어서.
사람들을 판단하고.
세상 모든 이치를 깨달은 것처럼.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나는. "선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서.
사랑의 눈으로 지체들을 바라보며.
배제가 아닌. 포용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길 기도한다.

내가 심판자이고, 하나님은 심부름꾼이 아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며, 내가 심부름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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