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2:7-17

작년 이 맘 때쯤. 100분 토론에 '최진기 선생님'이 나왔다.

그는 '통일비용'과 '분단비용'을 설명하며.
'작위에 의한 손실(통일비용)'과.
'부작위에 의한 손실(분단비용)'을 구분하였다.

어떤 행동을 해서 발생하는 '작위에 의한 손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지만.

'부작위에 의한 손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실제로. 통일비용보다 분단비용이 훨씬 큼에도.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이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어떤 말과 행동이.
나에게 손실을 주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두렵고. 더욱 민감하다.

반대로. 세상(육체의 욕망, 눈의 욕망,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그렇기에 쉽게 허용하며, 오히려 자기 곁에 두려한다.
우리 영혼을 얄금얄금 갉아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결국. 사랑은 물줄기와 같아서.
한 쪽을 막으면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의 시간과 재정, 관심과 열정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세상을 향한 물줄기의 방향을 틀어서.
하나님을 향해서. 지체들을 향해서.
또 건강하게 나를 사랑함으로.
주님 앞에 머물러야겠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요일 2:17)"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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