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3:5-11
'덕과 성품'
시간이 흐를수록. 이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형상.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전의 잘못된 습관/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신의 성품에 참여하며.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여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순례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야고보 사도의 권면처럼.
'행함 없는 믿음, 죽음 믿음'으로 살아선 안 될 것이다.
'떠벌이/입'만 구원을 얻을 것이 아니라. '온 몸'이 구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샘이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동시에 낼 수 없으니(약 3:11)"
혀에 재갈을 물리고.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악한 일을 금하는 것은 물론이며.
마음의 순결함/깨끗함/정결함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기(약 1:15)"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성도로서. 나의 언행과. 나의 마음을 돌아본다.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어제 하루'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가?
나는. 어제 하루. '가까운 사람들'에게(내 가족과 내 친구, 동료들).
어떤 말과 행동을 하였는가?
나는. 어제 무엇을 갈망하고. 무엇을 바랐는가?
내 마음의 소원/욕심은 무엇이었는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는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질투하며.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는가?
이것이. 내 평생의 과제/기도제목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께로 더 가까이 가고 있을까?
나는. 고집불통/표독스러운 어른이 아니라. 넉넉하고/성숙한 어른인가?
사람들은 나를 가까이 두고 싶을까, 아니면 멀리 두고 싶을까?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며칠 전. 보았던 책 제목이 떠오른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 줄까?"
책 제목만 보았을 뿐. 내용은 보지 못했기에. 뭐라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목'만으로도 강렬하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 줄까?"
어쩌면. 이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지표이지 않을까?
말로만. 신앙 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며.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따라.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는 일.
이것이 순례자로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 아닐까?
그렇기에. 오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루를 시작한다.
마음과 몸에 재갈을 물리고.
나의 예전 본성/본능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가 그러하기를.
주님이 나를 다스리고. 지도하시기를.
그 주님께. 오늘을 의탁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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