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17-27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한다.
다윗은. 그 슬픔을 억누르지 못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며.
해가 질 때까지 울며. 금식하였다(삼하 1:11-12).
그리고. 그들을 애도하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활의 노래'였다.

시를 읽으며. 다윗의 마음을 묵상해 보았다.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마음은 이해가 되었다.
세상에 요나단 같은 친구가 어디 있는가.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한 까닭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그를 사랑하였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어떤 것이든 아까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다윗 때문에.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살기 가득한 사울 앞에서. 다윗을 변호하다가.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삼상 18:30)"이라는 험한 말을 듣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꼿꼿이 자신의 목소리를 노이다가.
아버지 사울로부터. 창에 맞아 죽을 뻔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였다.
오늘 본문 26절에 기록된 것처럼.
'그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진한 것'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자리에 집착하지 않고.
한 사람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으니.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을지. 절로 이해가 간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리고. 나를 적으로 생각할 때도.
언제나 내편이 되어서.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를 생각해 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펐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다윗의 아픔/슬픔이 공감이 된다.


하지만.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윗의 모습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찌보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기뻐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사람이지 않은가.
그 사람만 없으면. 더 이상 도망자처럼 살지 않으며.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측면에서. 사울의 죽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라 생각하며. 마음 편히 살면 안 되는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람들 앞에서. 마음껏 기뻐할 수 없다면.
겉으로는. 적당히 애도하고. 적당히 슬퍼하면서.
속으로는. 내심 다행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가.
그게. 인간적인 나의 마음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렇지 않다.
정말.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퍼한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울 왕을 향한 표현이 그러하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산 위에 죽었다"고 말하며.
"가장 용감한 우리의 군인들이 언덕에서 쓰러졌다"고 말한다.
사울이 아무리 밉고. 싫다하더라도.
그의 공로를 치하하며. 그가 세운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24절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의 딸들아.
너희의 옷에 금장식을 달아주던. 사울을 애도하며 울어라"
다윗은 사울 덕분에. 이스라엘이 그동안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고 말하며.
사울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도리어. 그가 얼마나 값진 수고와 헌신을 하였는지. 기리며.
이 노래(활의 노래)를 기록하여.
유다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전수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다윗의 영성이다.
제 아무리. 밉고. 싫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온갖 비난과 조롱. 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며.
정말 그 사람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수용하며. 용납하는 자세.
그것이. 다윗의 살아있는 영성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난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는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6-48)"

이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말씀이지 않을까?

1) 한 사람을 사랑하되. 마음다해 그를 사랑하며.
2) 사람에 대한 경계와 편가름을 하지 않고.
정말 마음다해 그를 존경하며. 그를 업신여기지 않는 것과.
3)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적을 밝히며.
그들을 위해. 애도하고.
그들이 걸어간 삶의 발자국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의 삶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드린다.

오늘 하루.
어디를 갈 지. 누구를 만날 지. 어떤 소식을 전해들을 지.
아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오직 주님의 손에 붙들려.
겸손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 되기를. 마음 다해 소망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소원하며.
주님의 마음을 붙들고.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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