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3:22-39

다윗과 요압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브넬의 죽음' 때문이었다.

요압은.
아브넬이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다는 이유로.
아브넬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기 형제를 죽인 자가 눈 앞에 있는데. 어찌 그를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다윗과 아브넬 사이에. 협약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윗에게 이렇게 따져 묻는다.

"다윗 왕이시여.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어찌 아브넬을 그냥 보낼 수 있습니까.
그가. 내 형제. 아사헬을 죽였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그가. 우리 형제들에게 벌인 짓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요압은. 거칠게 화를 내며. 다윗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였다.
충분히 그럴만 하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로서. 둘은 친척 관계/한 핏줄이었는데.
다윗이. 지금 누구의 편을 들고 있는가?
아브넬의 편을 들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요압은. 다윗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며.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내 동생 아사헬이. 누구를 위해 싸우다가 이렇게 죽었는데.
당신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이러면서 말이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 몰래. 아브넬을 추격하여. 동생의 복수를 갚는다.
이것이. 그날에 행한. 요압의 일들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압에게 화를 내며. 그의 가문에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린다.

29절을 보면. 그 말이. 조금 지나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요압의 집안에는. 고름을 흘리는 병자와.
나병환자와. 지팡이를 짚고 다는 사람과.
칼을 맞아 죽은 자들과. 굶어 죽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쉽사리. 이해되지가 않는다.
다윗이. 조금 과한 것은 아닌가 싶고.
요압의 편에 서서. 그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왜? 요압도 자기 백성이니까.
아브넬만 자기가 품어야 할 백성이 아니라.
요압도 어찌보면 다윗이 품어야 할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요압과 자기 사이에 명백한 선을 긋는다.
이것은. 요압의 독단적인 행동이었으며.
자신은. 이 일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고 선을 긋는다.
그리고.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한다.

성경은. 그런 다윗의 모습을. 이렇게 평가한다.
"온 백성이 그것을 보고서. 그 일을 좋게 여겼으며.
다윗 왕이 무엇을 하든지. 온 백성이 마음에 좋게 받아들였다(36절)"

큰 틀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대의를 세우기 위해서라면.
대통합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쳐선 안 될 것이고.
그런 측면에선. 다윗의 모습이.
왕으로서 필요한 행동. 적합한 행동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다윗의 모습 또한. 마냥 순수하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왜냐하면. 39절을 보면.
다윗 안에서도. 요압에 대한 묘한 경계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39절을 보면. 다윗이 자기 신복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루야의 아들들이 나보다 더 강하니.
비록 내가 기름부음 받은 왕이라고 하지만. 보다시피 이렇게 약하오.
그러므로.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에게.
주님께서 그 죄악에 따라 갚아 주시기만 바랄 뿐이오(39절)"

어찌보면. 다윗도. 지금 정치를 하고 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라도. 요압과 스루야의 아들들도.
자기 자리를 뺏고. 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요압과 스루야의 아들들을 향한. 경계심이 발동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다윗의 마음엔. 이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브넬을 통해서. 요압과 그의 형제들을 견제하고 싶었던 마음"
그런데. 아브넬이 죽어버렸으니.
다윗 입장에선.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내가 너무 꼬아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중 어느 누구도.
100% 순수한/순결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말씀을 하나로 정리하기가 참 어렵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고.
사람들은. 입체적으로. 참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 속담이 생각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말이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 이렇게 기도할 뿐이다.

"주님.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참 어려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게 맞는 것 같고.
저렇게 보면. 저게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이 얘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저 얘기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판단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무엇이 지혜로운 행동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모든 사람의 필요와. 목소리를 듣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때로는. '이것이 옳다'는 나의 생각/자만 때문에. 그릇된 길을 행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섭섭한 마음에. 관계가 깨질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걱정과 불안. 욕심과 탐욕 때문에.
사람들을 버리고.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마도 그게. 우리의 연약함이며. 그게 우리의 허물인 것 같습니다.

주님. 이런 우리의 모습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주님.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갈 길 몰라 방황하며.
이리저리 치우치고. 흔들리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앞에서. 바른 길을 선택하고.
주님 뜻하신 길로 살아갈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자비와 은혜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비틀거리고. 흔들리고. 넘어지는 우리라 하여도.
주님.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주님. 우리를 다시 세워 주시옵소서.

연약한 우리의 삶을 주께 의탁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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