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9:1-14
압살롬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은 다시금 정치적 혼란/격변기를 맞이하게 된다.
당장 급한 것은. 다윗을 반대하고. 압살롬을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태도를 바꿔서. 다윗에게 줄을 서려 한다.
시므이와 이스라엘 지파가 대표적이다.
시므이가 누구였던가?
베냐민 사람으로서.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그를 조롱하고. 비난하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랬던 그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도를 돌변하게 된다.
그리고.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유다 사람 틈바구니에 서서. 다윗에게 이렇게 말한다.
“왕이시여. 저의 지난 날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요셉 지파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왕이시여. 저의 지난 날의 잘못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고.
부디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삼하 19:19-20)”
얼마나 비열한지 모른다.
한때는. 그렇게 다윗을 조롱하고 비난하던 인간이.
지금은. 다윗 앞에 납짝 엎드려. 자기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 야비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속상한 순간이다.
압살롬에게 줄을 섰던. 이스라엘 장로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압살롬이 죽었다느 소식을 듣고. 그들은 멘붕에 빠졌다.
자칫 다윗이 악한 마음을 품기라도 한다면.
그들은 죽은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우리가 다윗을 왕으로 다시 불러 옵시다.
우리가 다윗 왕을. 다시 왕궁으로 모셔오는 일에 주저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다윗 왕에게 가서. 우리 의사를 전달하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모셔오도록 합시다(삼하 19:10)”
정말 어이가 없다.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들 마음에 안 든다고. 왕을 폐위 시켰다가.
또. 자기들 필요에 따라. 왕으로 복권시키겠다는 것인가.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을 바꾸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바라보며.
솔직한 말로. 구역질이 나고. 욕이라도 한 바가지 부어주고 싶다.
하지만. 마냥 그럴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인생이니까.
자신들의 유익과 필요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며.
거짓과 모순으로. 꽉 차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니까 말이다.
이처럼. 인간의 자기 한계와 모순 속에 살아가는 것은.
다윗 또한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친족. 골육지친(12-13절)"이라는 말이다.
다윗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자식에게도 배신/배반을 당했었고.
군대장관 요압과도. 묘한 긴장 관계에 놓여 있지 않았던가.
그런 측면에서. 다윗은.
현실적으로. 자기 사람들을 배치하고.
자신의 세를 불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다윗은. 유다 지파를 운집하고.
군대장관 요압을 대신할 사람. 아마사를 컨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하였다.
군대 장관 요압을 대신해 세우려 했던. 아마사는.
군대 장관 요압의 손에 직접 죽게 되었고(삼하 20:10).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의 싸움/분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치졸하고. 비열한 싸움이 되고 말았다(삼하 19:42-43).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보며.
전도서 기자의. 헛헛한 고백이 생각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우리는 이처럼. 헛되고 헛된 세상 가운데서.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이 아침. 말씀을 보며.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사무엘하에 기록된 말씀이. 오늘 우리 사회와 너무 비슷해 보였고.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너무 어렵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주님 앞에 나의 이 마음을 토로하며. 엎드리는 것 뿐이다.
“주님. 너무 어렵습니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는 것도 어렵고.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길을 찾는 것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도. 허덕이며. 비틀거리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선과 악이 분명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리저리 복잡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고. 분명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지럽고. 난잡한 속세를 떠나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나 혼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님을 알기에.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하루도. 이리저리 헤매며. 비틀거리며 살아갑니다.
주님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주님.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롤러코스터를 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 마음의 평안과 힘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주님. 주께서. 우리를 당신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선택할 수 있는 분별력과. 생명력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어지럽고. 혼탁한 이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고 진실하게 살 수 있도록.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을 떠나. 회피하고. 도망치고. 비겁하게 살지 않게 하시며.
오직 주의 자녀로. 정직하고. 꿋꿋히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늘 한날이 그러하길 소망합니다.
주여. 우리를 찾아와 격려하여 주시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늘 나의 삶과. 우리 공동체를 주께 의탁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주여 우린 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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