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0:1-16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만물상 동석(이병헌)이. 육지에서 제주로. 물건을 내다 판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육지로 가기도 어렵고. 마트로 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동석이. 마을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을 손수 건내 주는 것이다.
근데. 하루는. 어르신들이 도통 보이질 않는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동석이 아닌데. 이게 왠 일인가. 궁금해 하던 찰나.
동석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어르신들이. 다른 만물상에게 물건을 샀다는 것이다.
이에 동석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다들 갑서. 오늘 장사 안 하쿠다.
나가 오늘 사 이추룩 손님이 없나 해서.
나는 할망, 하루방들. 그저 눈만 빠지게 나만 기다리는 줄 알앙.
엊저녁에 감기 몸살 오한이 걸려도, 썅.
차 끌엉. 배 탕. 파도 탕. 하루 십만 원 벌이가 안 돼도. 아유 여길 와신디, 썅.
그추룩 1년 365일을 매주 한 번을 안 거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겐디. 딴 만물상에서 물건을 사마씸?
경하면 난! 경하면 난!!"
화를 내는 동석을 향해.
몇 몇 어르신들이. "우리는 안 그랬다"며. 애써 동석의 마음을 달래 보려 하지만.
동석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오히려. 물건을 집어 던지며. 더 큰 소리로 화를 낸다.
"다 똑같아마씸.
아니. 다른 할망들이 사민 말려야지게. 그냥 보고만 있어수꽈?
난 어떵하랜? 난? 난? 어?
자기들 아쉬울 땐 그저 밤이고 낮이고 전화행.
건전지 사 와라. 택배 보내 달라. 약 사달라.
자기 자식새끼보다도 더 부려 먹고선.
딴 차 오민. 그디서 물건을 사마씸?
와, 진짜 이러는 거 아니지게. 이참에 연 끊읍서!"
그렇게 동석은 길을 떠났다.
동석은 그동안 물건을 판 것이 아니라. 신의를 팔았으며.
우리는. 서로 다른 '남'이 아니라. '한 몸'이라 생각했는데.
신의를 져 버리고. 자기를 내 팽개친 마을 사람들을 보며.
배신감에. 치를 떨게 된 것이다.
근데. 이런 동석의 마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누가 그들을 도와주고. 구해 주었던가?
"하나님"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한결같은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그들이 주님을 찾고. 주님을 구할 때면.
우리 주님은. 늘 언제나.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그들을 구해주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랑을. 귀히 여기지 않았다.
주께서. 사랑으로/진실함으로/신의로 그들을 대하셨지만.
그들은. 이 사랑을 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을 홀대하고. 업신여겼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참다 참다. 이렇게 말슴하신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몸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지 않았더냐.
내가 너희를.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의 손에서도 너희를 구하지 않았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한번 두번도 아니고.
틈만 나면. 계속 나를 버리고. 나를 배신했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나 가서 부르짖어라.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라.
나를 버리고. 나를 팽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내게 도움을 청하고. 내게 도움을 구한단 말이냐.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너희가 선택한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라.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며 불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 보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좀처럼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도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이 상하시고.
정말 이스라엘 백성과 연을 끊고.
'이제 나 몰라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셨던 것이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던가.
자식 새끼가 아무리 밉고. 또 미워도.
어떻게 부모와 자식의 연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우리 주님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다시 눈을 돌리신다.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니.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다시 그들을 향해. 얼굴을 돌리시는 것이다.
그들이. 100% 완벽하게 주님을 따르고. 주님께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언젠가 다시 하나님의 등에 칼을 꽂고.
그들이 언젠가 다시 하나님을 외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상처받을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그들의 마음을 받으시고.
그들을 향해. 당신의 눈을 돌리고. 계신 것이다.
"내가 이번에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고.
"내가 이번에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내가 이번에는. 절대로 지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보하고. 물러서고. 또 져주고 계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말씀은. 나에게도 이와 같이 말하는 것 같다.
-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내 자존심과 높아진 내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
- "사랑은. 상처 받기를 각오하고. 상처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상처 받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기를 포기하고. 이제 그냥 뒤로 물러서려는 것은 아닌가?
- "사랑은. 결코 떨어지지 아니하며.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며.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나는 정말 이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가?
어쩌면.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 잘 이해되기 때문에.
적당히. 이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적당히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당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그들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주께서 오늘 나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사랑을 원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이 시간. 나도 주님 앞에 나아가. 당신의 사랑을 간구한다.
주께서 당신의 눈을 돌이켜.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돌보셨던 것처럼.
주께서 당신의 얼굴을 돌이켜. 그들이 겪는 고통을. 더 이상 보고만 계실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 나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내 마음에 차고 넘치길 소원한다.
그래서. 정도껏/적당히/할 수 있는 만큼/계산적인 사랑을 하는 내 모습이 아니라.
주께서 사랑에 눈이 멀고. 주께서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용납하고 사랑하셨던 것처럼.
오늘 나도 그분의 사랑을 배워가며. 알아가는. 그런 하루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그런 사랑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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