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15-22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오해와 불신'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게 내 잘못이 아닌 데도. 괜히 내가 그 책임을 져야 할 때도 있고.
본 뜻은 그게 아닌 데도. 이게 와전되고 곡해되어서.
괜히 오해를 사고. 불신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속이 상한다.
"왜 저 사람은.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을 몰라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고.
"왜 저 사람은. 우리가 해명하고 또 해명해도.
왜 계속해서. 우리를 믿어주지 않고. 우리를 불신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오해를 사고. 불신을 받을 때면. 마음이 참 힘들다.
어떤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오히려.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소설을 쓸 것 같고.
자기 혼자. 자기 마음대로 이 길을 갈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남는다.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다.
근데. 오늘 말씀을 보니. 사도 바울도 그랬던 것 같다.
특별히. 사도가 고린도교회 방문 일정을 두고. 계속 그 여정을 변경하게 되는데.
이 문제 때문에. 사도는 사람들에게 많은 불신과 오해를 샀던 것 같다.
"아니. 왜 사람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해?"
"저 사람. 정말 믿을 만한 사람 맞아? 거짓말쟁이 아니야?"
때문에. 사도는. 자신의 신실함과 정직함에 대해서. 계속해서 호소하고 해명해야 했다.
그래서 어제 사도가 했던 말이 무엇인가?
"나는. 여러분을 대할 때. 한 번도 거짓으로 대한 적이 없고.
오직.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대했다"라는 얘기를 했고.
오늘은. "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 것이. 변덕스러운 일"이거나.
"거짓말로. 여러분을 속일 생각으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고 전한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그 마음을 온전히 받아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사도 바울을 향해서. 맹렬히 비난을 하고 있었고.
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미심쩍은 마음으로 그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까?
사도 입장에서는.
"내가 당신들을 어떤 사랑으로. 섬기며 사랑했는데. 왜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내 본심을 알아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눈물로. 자신의 글을 이어간다.
제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을 것이며.
또. 자기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사라지고.
서로가 믿음 안에서. 하나 되고. 한 가족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근데. 오늘 이 마음이. 사도의 마음일 뿐만 아니라. 오늘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특별히. 며칠 전. 전국이사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 나는. 큐티 나눔에. 이런 글을 적었다.
"완전히 나가리가 되고. 완전히 물거품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주께서 우리에게 피할 길을 내시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싸움/위기들을.
우리가 한 마음으로 타개하고. 한 마음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실낱같은 희망. 작은 소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사대회 당일.
전국의 이사들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했었고.
"정말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었다.
마치.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선. 새로운 부대가 필요하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그러한 변화/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이사대회 당일.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정말 멀고 험하겠지만.
앞으로 넘고 넘어야 할 산이. 정말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가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떤 분은. 계속해서.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딴지를 거는 것 같다.
아마.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것 같다.
"분명. 이 사람이. 딴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분명. 이 사람이. 딴 속셈을 가지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껀껀이 나의 발목을 잡고 넘어진다.
그러다 보니. 내 입장에선.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겨진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싶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이 꼬여 있는가 싶다.
그래서. 속이 상한다.
도대체. 이 분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드릴 수 있나 싶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분의 마음을 얻고. 신뢰를 얻을 수 있나 싶다.
어떤 측면에선.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선. 이 분의 얘기를.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오늘 본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도도 이런 일을 겪었구나. 사도도 이런 수모를 당하였구나.
사도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기에. 이 시간. 오늘 우리도.
사도의 기도를 따라.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 앞에 머무르길 기도한다.
"주님. 사도가. 갖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랑의 씨앗을 뿌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와 기쁨의 고백이 아니라.
오해와 불신의 고백이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받지 않고.
사도를 향해서. 계속해서 비난하고. 조롱하던 무리가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 한 단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며. 마음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이것을 받아들이고. 주님 앞에 서길 원합니다.
주님.
사도가. 때가 되면. 그들이 사도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리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주님.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의 반응과. 그들의 목소리에.
일일이 반응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주님의 부르심과 주님의 뜻을 따라.
제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고. 주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
제가 가던 길에서. 돌아오고 멈추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오직 한결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께서 사람의 마음을 주장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시오니.
주님.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시고.
주님. 우리 가운데. 당신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은혜와 사랑 부어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eat. 피난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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