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2:35-38
예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옷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떠나라(눅 9:3-4)"
이것은. 우리의 삶과 사역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주께서 우리의 삶을 돌보시고 책임지시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그분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는 말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은. 빈손으로. 이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그들을 맞아주면. 그들도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사람들이 그를 거부하면. 그들도 기쁨으로 이 길을 떠났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 담겨 있으니.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의 뜻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근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 주님이. 정반대로 말씀하신다.
실제로 오늘 본문 36절을 보면. 우리 주님이.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눅 22:36)"고 하시는데.
이 말씀의 본 뜻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형편과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이다.
한때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호의적이고 친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등을 돌리고. 칼을 꽂으며.
당신의 삶이. 평탄치 않고. 어려울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너희가 옷을 팔아서. 칼을 사고.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을. 그것을 챙기고. 자루도 챙기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람들의 평판과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멀리/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를 둘러싼 현실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스컴과 뉴스를 보면.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이야기가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혐오하고. 그를 박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라 부르며.
'목사'가 아니라. '먹사'라 부른다.
교회에 대한. 온갖 조롱과 멸시의 말을 퍼붓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 보다. 구분된 삶을 살아가는데 더 익숙해지는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두 가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우리를 둘러싼.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분위기가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어찌 외면하고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주님이.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길을 걸어가셨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우리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주님이. 사람들로부터 매를 맞고. 수치를 당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수치를 지고. 우리의 매를 맞아야 한다.
그것이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길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본문에 주어진 말씀을. <문자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오늘 우리의 삶과 형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주를 기다리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주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이 정말 쉽지 않고.
비루하고. 남루하고. 너무나 어렵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한다.
당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충성하고.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상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또 기쁨으로 이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 되면 좋겠다.
주께서 수고하고. 탄식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위로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면 좋겠고.
오늘 하루. 지치고 수고한 자들에게.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그런 일들이 오늘 우리 가운데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중간에 낙심하고. 이 길을 떠나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고.
주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 속에서.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가며. 끝까지 이 길 가운데 서 있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려 한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주께서 우리의 삶을 관찰하여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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