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24:1-12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빈 무덤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이것을 이상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들은. 때로는 어리둥절 하고. 때로는 당혹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무덤으로 달려간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한 다음. 어떤 표정을 지었는가?
그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이상하게 여겼으며.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당황스러워 하였다.

베드로와. 예수의 제자들도 그렇다.
그들은. 예수님의 빈무덤에 관한 소식을 듣고.
이것을 "어처구니 없는 말"로 여겼으며.
베드로는 그 일을 보고. "이상한 일로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초기 반응은. 이 사람들이 모두 똑같을지 몰라도.
나중의 반응은. 서로 다른 형태로 결말이 나고 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것을 열한 제자와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면.
사도들은. 그 말을 믿지 않고. 예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진 걸까?
그들은. 같은 얘기를 듣고. 같은 현상을 바라보았는데.
왜 한 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것을 증거하였다면.
왜 또 다른 한 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며. 믿지 않았던 걸까?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여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지만(8절).
사도들은.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그렇지 아니한가.
여자들이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한 다음.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천사들이 여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거라.
인자는 죄인의 손에 넘어가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그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
골똘히 예수의 말씀을 <회상>하였다.
우리 주님이 살아계실 때에. 그분이 우리에게 하셨던 말씀과.
주님의 말씀이. 바로 지금. 이 때를 위한 말씀임을.
상기하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현상을 보고.
이 현상과. 주님의 말씀을. 함께 연결/링크시켰다.
이것이. 이상한 일/황당무계한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성취된 일이라고 여겼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것을. 자신들의 믿음과 결부시키질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냥 그때 한 말씀일뿐이지.
그것이 오늘 우리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 주님이 살아생전 하셨던 말씀을. 다시금 기억하고. 회상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냥 현실 속에서. 현실에 갇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여자들의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이 말을 어처구니 없게 생각하였고.
여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 말을 믿지 않은 것이다.
아니.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이다.

3년 동안. 그렇게 주님의 뒤를 따라다니고.
3년 동안. 그렇게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그분 곁에 머물렀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며.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삶을 함께 돌아본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던. 여자들의 모습과 같은가.
아니면. 집에 머물러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같은가.

오늘 우리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오늘 우리 삶에 결부시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제자들처럼.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회상하지 못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현실에 갇혀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답보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믿음이.
종교 생활이 아닌. 진짜 신앙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과 고백이.
이 땅 가운데 뿌리를 내리고. 이 땅 가운데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가운데.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그런 어리숙한 믿음. 미진한 믿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목격했던.
그 제자들처럼.
오늘 우리의 믿음도. 살아서 팔딱팔딱 뛰는.
그런 생기 있는 믿음. 그런 소망의 믿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망한다.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는. 주의 손을 보라.
보라. 하나님 구원을. 보라. 하나님 능력을.
너희를 위해서. 싸우시는. 주의 손을 보라."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일하시는.
그분의 능력과. 그분의 손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보라 너희는 두려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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