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6:24-31
요람 왕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절.
이스라엘은 아람(시리아)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오늘만 하더라도. 벌써 세 번째다.
열왕기하 5장에서.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진격하여.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는 얘기를 하고.
열왕기하 6장에서. 아림 왕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진격하고(왕하 6:8).
오늘 본문에서도. 아람 왕이. 그의 온 군대를 소집하여.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고 한다(왕하 6:24).
그 결과. 이스라엘은. 큰 어려움과 궁핍함을 겪게 되었다.
먹을 것이 없고. 살 길이 막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수 없는 것들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귀 머리를 잡아 먹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에는. 비둘기 똥을 잡아 먹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사람을 잡아 먹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8절과 29절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며칠 전에. 이 여자가 저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을 내놓아라. 오늘은 네 아들을 잡아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 먹도록 하자"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이란 말인가.
어떻게 자기 아들을 잡아먹고. 사람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살을 내어주고. 자기 피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찌 아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이스라엘 안에 버젓이 벌어졌다.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세겔에 팔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이. 은 5세겔에 거래되고.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고. 자기 아들을 팔아넘기는. 말도 안되는 일이 말이다.
이에. 이스라엘 왕은. 자기 옷을 찢고. 하나님 앞에 비참한 목소리로 화를 낸다.
"하나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말이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데. 내가 어찌 당신을 도와 줄 수 있겠소!"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비아냥과 원망의 목소리가 가득 차 있다.
오늘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이. 하나님의 잘못. 하나님의 탓 때문이며.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고. 아무런 죄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 31절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왕이 저주받을 각오를 하고. 결심하여 말하였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 그대로 있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벌 위에 더 벌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고 말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지 않은가.
이게 어찌 하나님의 잘못이란 말인가.
이게 어찌. 하나님 나라 백성이 할 말이란 말인가.
하나님께 속상하고. 억울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어찌 하나님과 맞서 싸우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주께 자비를 구하고. 은혜를 구하여도 모자랄 판에.
어찌.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고"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결심을 하고. 그 각오로 하나님과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참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이스라엘이 계속 적군의 침입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참 불쌍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입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의 처지가. 참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우리의 위치와 처지를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디서부터 기인되었는지.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우리가 어디로 돌이키고.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그것을 깨닫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오늘 우리 삶에 너무 중요하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섞인 목소리와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거기서 그쳐야 한다.
오늘 우리의 일상과 무너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과 맞서 싸우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우리 인생의 해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문제를 그르치고. 문제를 확장시킬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낸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 주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주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기를 간구하고. 소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의 기도처럼.
"내 하나님. 내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시 22:1)"라고.
탄식하고. 절규하고 난 다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길.
간구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하나님 앞에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신앙 고백이.
반쪽짜리 신앙이 되고. 반쪽짜리 기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감정만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그런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길 간구하며 기도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진멸되는 우를 범하였는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그와 같은 잘못/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시편 기자가.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갈망하였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제 통화를 나눈. 한 지체를 위해 기도한다.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와서.
임금 체불을 당하고.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주께서 그의 형편과 처지를 살펴주시길 간구하며.
그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께서 그에게 피할 길을 내어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길.
이 시간 간구하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은혜. 이와 같은 자비가 베풀어지길 간절히 간구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세상의 유혹 시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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