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5:21-33

1세기 유대 사회에선. 여성들의 권리와 지위가 매우 낮은 편이었다.
20세기 들어. 그제서야 여성들의 참정권/투표권이 허용되었는데.
그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나 권리가 얼마나 낮았겠는가.
그들은. 인구 조사를 할 때도. 셈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교육이나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상당한 제약과 어려움을 겪곤 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문화/인식을 보면.
여성은. 남성을 돕는 한 객체/조력자에 불과하였으며.
성전 문화 안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뵙고 만날 수 없는. 제한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성전 구조를 보면. 이방인의 뜰과. 여자의 뜰과. 남자의 뜰로 구분되는 것을 보게 된다.
여자들은. 성전 안으로.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갈 수 없고.
딱 여기까지만! 딱 여기까지만 허용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들을 향한. 남성들의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어떠하였겠는가.
그것은 물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그냥 자기 소유의 일부분. 하나의 구성품으로 생각하였으며.
그래서 그들을 하대하고. 무례하게 대하기 일쑤였다.
이것이 1세기 유대 사회에서 벌어지던. 아주 일반적인/습관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그와 같은 모습을 엄히 금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남편 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자신을 내주심 같이 사랑하라"고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거룩하고. 존귀한 것인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하였는데.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고. 자기를 깨뜨리고. 자기를 허비한 것처럼.
남편 된 이들도. 이와 같은 사랑.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한 방식이며.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삶으로.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이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 같이 여기고 소중히 여기라"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기 원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존귀히 여기며. 존중할 것을 말씀하신다.

더 이상 어떤 권위와. 자기 자신을 높이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깨뜨리길 원하시며.
상대의 인격을 깨뜨리는 말과 행동을 지양하고.
서로 존귀히 여기며. 사랑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다.
그 당시. 여성들이 하대 받는 것과. 무례히 행하는 것을 겪으면서.
그들의 인격과 그들의 삶이. 얼마나 무참히 짓밟히고 깨졌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떤 측면에선.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을 것이며.
어떤 측면에선. 싸우고 투쟁하는 마음 또한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길 것을 가르치고 있다.
남편들이 자기도 모르는 행동과 악을 일삼을 때.
그들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놓을 것을 가르치며.
사랑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머리를 숙일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한다.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이것은. 어떤 의무감이나. 당위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형제자매를 향한. 서로의 사랑과 자비/겸손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그렇게 서로 먼저 사랑하고. 섬길 때.
이 땅 가운데 평화가 임하고.
하나님의 자비/통치하심이. 이 땅 가운데. 가정 가운데 임하고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와 같은 사랑. 이와 같은 자비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가. 어찌 형제자매의 목에. 십자가를 지우고. 멍에를 지울 수 있겠는가.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지는 것이지.
형제자매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형제자매에게 억지로/강제로 그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당신이 먼저. 나에게 순종하면.
그러면 그 다음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겠다 말할 수도 없을 것이며.
당신이 먼저 나를 사랑하면.
그 다음에 내가 당신에게 순종하겠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랑은. 먼저.
내가 먼저 그 길을 행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어떤 보상이나.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주 앞에 행할 때.
그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칭찬하시며.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당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내가 먼저 그 길을 행하고. 내가 먼저 그 길을 걸어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를 존귀히 여기며.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가정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을 통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나타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우리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자매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왕이 여기 계시니. 사랑하며 섬기리"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과. 말씀의 진리가.
오늘 우리 마음 가운데. 깊이 새겨지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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