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8:15-17
한병철 교수는. 오늘 우리 사회를 가리켜.
<피로 사회>라고 명명하였다.
성과주의와 과열 경쟁에 파묻혀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사라진 사회.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며.
피곤함과 고단함 가운데. 하루를 살아가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의무감에 일터에 출근하기도 하고.
하루가 빨리 지나. 퇴근 시간이 오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루 하루 삶의 피곤함과 고단함은. 다른 것으로 보상 받고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극단적인 삶을 오갈 때도 있다.
하루 하루. 생과 사를 오가는 전쟁터 같은 삶을 살다보니.
하루를 마친 다음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 놓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과 환희도 잠시 뿐.
우리는 다시금 지옥(?) 같은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
주일 저녁. 월요일 아침 출근만 생각해도 치가 떨리고.
연휴를 마친 다음에는. 한동안 거기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삶에 의미가 있을까요?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사람들이 의미 있는 답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구박을 주고. 타박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냥 사니까 사는 거지.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람쥐 챗바퀴 돌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침을 시작하면. 밤을 기다리고.
월요일을 맞이하면. 금요일을 기다리고.
하루를 시작하면. 월급날을 기다리는.
<피로 사회/좀비 사회> 같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얘기할까?
정말 오늘 우리 삶이. 소모품처럼. 닳아 없어지는 삶을 살기 원하는 걸까?
오늘 우리 삶이. 죽도록 일만 하다가. 그렇게 삭아지고. 낡아 헐어지기만을 바라는 걸까?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짓지 않으셨다.
주께서 엿새 동안 일하시고. 그 후에 안식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주께서 그와 같이 살도록 만드셨다.
오늘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더라도.
"내게로 와서. 쉬고 안식하길" 원하셨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고를 보면.
메소포타미아/바벨론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그 당시. 쉼과 안식은. 왕의 자제들/왕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모든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주께서 모든 일을 마치시고 난 다음. 안식하고 쉬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안식일을 기념하여. 거룩히 지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삶을 살길 원하는 것이며.
이것이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으로. 기록되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의 권면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나는 생을 즐기라고 구너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마냥/그냥.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과 쉼 가운데. 균형을 지키고. 자기를 돌보라는 것이다.
일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피조 세계 속에서.
인간으로서 주어진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마음껏 기뻐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세상에 더 좋은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그 다음에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허락바은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말이다(15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자유와 평화가 있는데.
그것을 한평생 사는 동안. 마음껏 누리고 즐기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역할/책임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가로채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인간 세계의 고유한 몫이며. 인간 세계의 고유한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주님의 참된 자유와 안식이 있길 기도한다.
일과 업무와 많은 노동으로 인하여. 피곤하고 지친 이들에게.
주님의 참된 안식과 자유가 주어지길 기도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된 자유와 안식을.
마음껏/흥청망청 사용하는. 그런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으면 좋겠고.
일과 쉼에 있어서. 균형을 잡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기도한다.
그래서.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한평생을 사는 동안.
우리가. 소모품처럼. 낡고 닭아지고 없어지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의 결과 은사를 따라.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즐거워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어린 아이 같은 우리. 미련하고 약하나.
주의 손에 이끌리어. 생명 길로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꽃이 피는 들판이나. 험한 골짜기라도.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오늘 하루.
피곤함과 고단함 가운데. 물들어 있는 우리에게.
주께서 당신의 생기와 호흡을 불어 넣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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