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나훔'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20.08.25 :: 2020.08.25(화) 나 1:1-8

나 1:1-8

'니느웨' 하면. 성경의 어디가 떠오르는가?
바로. '요나서'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라 하였고.
니느웨는. 요나의 이야기를 듣고. 당장 회개하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 '버럭' 화를 낸다.
"것봐요.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요.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이놈들을 싹 쓸어 없애버려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구요!"
핏대를 세우고. 씩씩거리는 요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오늘. 요나가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일이 일어난다.
그것은. '저 큰 성읍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다.
실제로 나훔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니느웨에 대한 심판과 멸망에 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3절 말씀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시지만.
주님은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은 당신이 다니시는 길이요.
구름은 당신의 발 밑에서 이는 먼지이다(3절)"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
먼저.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요나서의 말씀 그대로다.
실제로 요나서 4장 2절에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욘 4:2)"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훔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훔 선지자는 뒤 이어. 하나님을 뭐라고 말하는가?
"그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지만.. 동시에!!!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으채.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기고만장하고 까불다간. 큰 코 다친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모래사장에 거꾸로 꽂아버릴 수도 있고.
회오리 바람으로 저 멀리 날려버릴 수도.
당신의 발 아래 먼지로 만드실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는. 권능이 한없이 많으시며. 동시에.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2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있을 때 잘해야 한다.
천지분간하지 못하고. 정신 못차리다가 한방에 훅 가버리는 것이다.

노아의 때가 그러했다.
실제로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이 버젓이 두 눈을 뜨고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당신 앞에서 악을 행하며. 마음대로 살아갔다.

실제로. 성경은 그날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에 죄가 관영하였으니.."
관영이라는 말은. 컵에 물이 가득 차서. 이제 곧 넘칠것 같은 모습을 가리키는데.
그날에 사람들의 모습이 그랬다는 것이다.

복음서의 표현을 보면. 더 하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마 24:37)"
무슨 말인가?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지 하고 싶은대로. 지 마음대로 살아가면서.
일상을 버젓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하고 의로운 자였던.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하나님께 구원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 없이.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 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 면할 수 없었다.
'노아 때'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니느웨'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는. 또,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그분은.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분명 맞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은 결코. 헐랭이가 아니시다.
하나님은 '절대로' 죄와 타협하지 않으시며. 악을 묵인하지도 않으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다간.
큰 코 다치게 될 것이다. 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회개의 기도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로다(사 6:5)'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통곡하고. 절망하며.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옷을 찢고. 마음을 찢고. 주님 앞에 돌이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입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코로나가 계속 창궐하고.
교회에 대한 민심이 바닥에 떨어지고.
심지어. '교회가 신천지 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 앞에 엎드려. 통애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 우리의 연약함을 고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이것 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지금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납짝 엎드리고. 또 엎드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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