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데살로니가전서'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23.04.26 :: 2023.04.26(수) 살전 5:1-11
  2. 2023.04.25 :: 2023.04.25(화) 살전 4:13-18
  3. 2023.04.24 :: 2023.04.24(월) 살전 4:9-12

살전 5:1-11

인간은 참 얄팍한 존재다.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를 살펴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서는.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하다가도.
그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마치.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때 보이던. 학생들의 모습과 같다.
담임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마음껏 떠들고. 시끄럽게 굴다가도.
담임이 나타나고. 담임이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 금세 조용해 지고. 금세 모드를 전환하는 모습.

그래서. 망을 보는 학생들은. 담임이 나타나면 이렇게 말한다.
"야! 담임 떴다. 담임! 조용! 조용!"
그러면 교실은. 한순간에. 우당탕탕. 난리가 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담임이 오기 전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꾸며야 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눈가리고 아웅이다.
학생들의 속임수와 얄팍한 꼼수를. 어찌 선생님이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선생님들은 다 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학생들이 떠들고 공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느낌으로 짐작으로 알고 있고.
학생들이. 우탕탕탕 왁자지껄한 모습으로 돌변하고.
한순간에 조용해지고. 한순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예상은 확신이 되고. 확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 몫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가 선생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대처/임기응변이.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인간이 참 얼마나 파렴치하고. 어리석은가.
자기 눈 앞에 있는. 지금 당장의 순간만 모면하고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얄팍한 존재인가.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니. 너희는 준비하고 있으라(마 24:36, 42-43)"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갑자기/불현득 닥칠 것이니.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있어. 정신을 차리고.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막이 갑옷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라"고 말이다.


근데. 말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왜 우리가 불안해하고. 왜 우리가 두려워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우리가 왜 불안해 하겠는가.
우리가 캥길 것이 없다면. 우리가 왜 두려워하겠는가.
우리에게 창피할 것이 없고. 우리에게 숨길 것이 없다면.
우리가 떳떳하게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가 불안함과 두려움 가운데. 우리 주님을 맞이하고. 우리 주님을 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내 은밀함/죄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연약함/악함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 안에서. 내 모습이 부끄럽고. 민망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기 부끄럽고.
그래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기 민망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도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또 권면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단의 목소리. 사단의 음성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사도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았다"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것을 구하게 된다.

"주님. 우리 가운데. 당신을 향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다면.
주님 우리 가운데. 그런 마음을 사라지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죄책감과 불안함과 두려움과 근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이. 우리 주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단의 목소리. 사단의 참소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당신의 사랑 받는 자. 당신의 아들과 딸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구하는 첫번째 기도이고.
두번째 기도는. 오늘 우리가 그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주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해서.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고. 내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권리를. 악용하며. 횡포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빛의 자녀"로서. "또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주님 오실 날을 부끄러워하고.
주님 오실 날을 두려워하고.
주님 오실 날을 민망히 여기는. 그런 어리석은 자녀의 모습 말고.
주님 오실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그런 주의 사랑받는 자녀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나의 소망 되신 주. 주를 바라봅니다.
다시 오실 나의 왕. 예수. 주를 기다립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도. 영원히 주만 찬양해.
괴롭고 슬플 때. 낙망하여 넘어져도. 언제나 주만 찬양하겠네."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밤이나 낮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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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4:13-18

카톡을 열면. 오늘 생일인 친구들의 목록이 뜬다.
그러면. 그 친구들의 프사를 한번씩 들여다 볼 때가 있는데.
오늘 한 친구의 프사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몇 년 전 어머니를 하나님 품에 먼저 보내드렸기 때문이다.

근데. 그 친구의 프사에. 어머니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담겨 있다.
오늘 급작스레 변경한 건.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프사 배경 사진으로 담아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사진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OO가. 어머니를 참 많이 그리워하는구나.
그치. 이 친구가. 어머니를 참 많이 사랑했지.
어머니가. 참 많이 보고 싶겠다."

그래서. 그 친구의 프사를 보며. 짧게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그 친구의 인생 가운데.
어머니께서 남기신 유업과 추억들을 잘 간직하며 살기를.
또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도 가운데.
이 친구의 마음이 평안하고.
가족들의 마음 또한 주께서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기를 말이다.


근데. 그리고 난 다음.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한 말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을.
우리 주님께서.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14절)"이라고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들과 함께. 우리가 일어나서.
공중에 올라가. 우리 주님을 함께 맞이할 것(16-17절)"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의 삶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이 땅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의 이별/헤어짐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 잠시동안/한동안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계속되고 지속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세 가지의 기도를 함께 드리게 된다.

1) 먼저는.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다.

실제로 오늘 우리 가정과. 이웃만 본다 하더라도.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외인으로 지내고. 이방인으로 지내고 있는데.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이 언젠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길 간절히 바라고 소원할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천국에서 마주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슬프고. 또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시간.
아직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여전히 외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주님. 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님. 그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라"고 말이다.


2) 그리고. 오늘 우리의 삶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향해서.
그들을 향한 그리움과. 그들을 향한 소망으로.
더욱 깊어지고. 더욱 짙어지길 기도한다.

실제로. 이제 나도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부모님을. 또 사랑하는 가족/친구들을.
하나둘 하나님 품으로 보내드린 소식들을 더 많이 듣게 되는데.
그들 마음의 아픔과 상실을. 내가 어떻게 다 헤아리고 위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만남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영원토록.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인사한다.
"Good bye. 안녕히 가세요. 잘 가세요"가 아니라.
"See you again"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기도여야 할 것이다.


3)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오늘을 살아가며 마지막으로 드리는 기도는.
오늘 우리의 삶이. 지금 당장. 후회되지 않고. 지금 당장 미련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가족/친구들을 떠나보낼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있을 때 잘 할 걸"이라는 말이지 않은가.
"있을 때 잘 할 걸. 내가 왜 그때 그러지 못했을까?" 후회하며.
"있을 때. 잘 할 걸.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라고 생각하며.
뒤늦게 후회하고. 뒤늦게 탄식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말하곤 하지만.
그게 참 좀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이. 후회와 아쉬움과 미련과 탄식으로 점철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또 지체들 앞에서.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기쁨으로 마주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일어나는> 그런 공동체 되면 좋겠고.
우리가 함께 주를 맞이하고. 우리가 함께 주를 기뻐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기도한다.

"주께서 주신 동산에. 땀 흘리며. 씨를 뿌리고.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날 사랑하시는 내 주님께.
비바람 앞을 가리고. 내 육체는 쇠잔해져도.
내 모든 삶을 드리리. 내 사모하는 내 주님께.

땅끝에서. 주님을 맞으리.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땅끝에서. 주님을 뵈오리. 주께 드릴 노래 가득 안고.
땅의 모든 끝 찬양하라. 주님 오실 길 예비하라.
땅의 모든 끝에서. 주님을 찬양하라. 영광의 주님. 곧 오시리라."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은혜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땅끝에서(주께서 주신 동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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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전 4:9-12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에 대해. 칭찬 받는 교회였다.
그렇기에 사도는. 교회를 향해. 이렇게 권면한다.

"교우 사랑에 대해서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르침.
서로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라는 가르침을 받아서.
그것을 잘 실행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에게.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저. 지금 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사도는. 이 권면과 함께 다른 말을 덧붙인다.
그것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스스로 일을 하고. 스스로 벌이를 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는 일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인데.

사도가 이와 같이 말한 까닭은.
그들 가운데. 형제 사랑을 빌미로.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 먹고.
다른 사람들을. 악용해 먹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오늘 먹고 마실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그에게 짐을 지우고. 그에게 부담을 준다.

"내가 오늘 먹고 마실 것이 없는데. 당신 혼자 먹고 마시면 되겠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형제자매가 굶주리고. 배고파 하면.
그 사람을 돕고. 그 사람을 섬기라고 했는데.
당신은 어쩜 이렇게 말만 하며. 아무런 행동도 보이지 않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다녀간 자리에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죄책감과 수치감이 몰려온다.
누군가를 돕고 섬기고도. 오히려 죄책감을 받게 되고.
내가 이것밖에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비하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는 손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기에 바빴었고.
그래서. 그들은. 입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입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것을.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며.
그것을 빌미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유린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스스로에게 짐 지우고.
자기 스스로를 돌아보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실어주며.
수치와 부끄러운 마음을 실어주는. 악한 사람/나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도. 엄중한 경고도 다가온다.
왜냐하면. 오늘 나도. 이와 같은 경우/우를 범하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목사/간사로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훈육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형제 자매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짐지우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참 많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일차적인 수혜자/적용 대상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나를 통과하고. 나를 관통하지 못한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적용/말할 수 없는 부분이며.
우리는 이것을. 아주 신중한 태도로. 진중한 태도로 하여야 한다.

내가 감당하지도 못할 짐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짐지워서도 안되고.
내가 지고 싶지 않은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고의로 지워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이와 같이 권면한다.

"여러분은. 바깥 사람을 대하여. 품위 있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조용히 행하십시오.
여러분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존중을 받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존중을 받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말과 행동에 권위가 있고. 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이 나에게 참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십자가를 지우며.
그를 고통 가운데. 떠미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이 지고 있는 십자가를 함께 나눠지며.
그들에게 자유와 소망의 해를 선포하는 사람인가?"

"나는. 형제자매들의 마음 가운데. 죄책감과 수치감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인가?
아니면. 선한 도전을 하며. 선한 갈망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인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고. 누군가에게 짐을 더하고.
누군가에게. 부끄러움과 수치를 더하며.
누군가에게. 책망과 비난의 목소리를 더하는 공동체가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가 먼저. 겸손의 옷을 입고. 순종의 옷을 입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그에게 십자가를 지우고.
그를 코너에 몰아붙이는. 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먼저 그 십자가를 지고. 내가 먼저 그 말씀 앞에. 겸손히 반응하고 겸손히 엎드리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과 사역이.
누군가에게 부딪히는 돌이 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말 아름답고 흠이 없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릴 따름이다.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고.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순종의 마음을 주시고.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정직한 마음을 주시고.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you raise me up)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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