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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26 :: 2023.04.26(수) 살전 5:1-11

살전 5:1-11

인간은 참 얄팍한 존재다.
자기를 지켜보고. 자기를 살펴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서는. "정말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하다가도.
그 사람이 없고.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

마치.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때 보이던. 학생들의 모습과 같다.
담임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마음껏 떠들고. 시끄럽게 굴다가도.
담임이 나타나고. 담임이 가까이 오는 것 같으면. 금세 조용해 지고. 금세 모드를 전환하는 모습.

그래서. 망을 보는 학생들은. 담임이 나타나면 이렇게 말한다.
"야! 담임 떴다. 담임! 조용! 조용!"
그러면 교실은. 한순간에. 우당탕탕. 난리가 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담임이 오기 전에.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꾸며야 하니까.


하지만. 이것은 눈가리고 아웅이다.
학생들의 속임수와 얄팍한 꼼수를. 어찌 선생님이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선생님들은 다 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학생들이 떠들고 공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느낌으로 짐작으로 알고 있고.
학생들이. 우탕탕탕 왁자지껄한 모습으로 돌변하고.
한순간에 조용해지고. 한순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반응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예상은 확신이 되고. 확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 측면에서.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학생들 몫이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가 선생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대처/임기응변이.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러니. 인간이 참 얼마나 파렴치하고. 어리석은가.
자기 눈 앞에 있는. 지금 당장의 순간만 모면하고 피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얄팍한 존재인가.

그렇기에.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니. 너희는 준비하고 있으라(마 24:36, 42-43)"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사도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갑자기/불현득 닥칠 것이니.
너희는. 근신하고. 깨어있어. 정신을 차리고.
오직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막이 갑옷을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라"고 말이다.


근데. 말씀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왜 우리가 불안해하고. 왜 우리가 두려워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부끄러울 것이 없다면. 우리가 왜 불안해 하겠는가.
우리가 캥길 것이 없다면. 우리가 왜 두려워하겠는가.
우리에게 창피할 것이 없고. 우리에게 숨길 것이 없다면.
우리가 떳떳하게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텐데.
왜 우리가 불안함과 두려움 가운데. 우리 주님을 맞이하고. 우리 주님을 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아무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내 은밀함/죄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연약함/악함이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 안에서. 내 모습이 부끄럽고. 민망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기 부끄럽고.
그래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기 민망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도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또 권면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소리.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단의 목소리. 사단의 음성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사도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았다"고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이것을 구하게 된다.

"주님. 우리 가운데. 당신을 향한.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다면.
주님 우리 가운데. 그런 마음을 사라지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안에서. 죄책감과 불안함과 두려움과 근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이. 우리 주님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단의 목소리. 사단의 참소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고.
오늘 우리가. 주님 안에서. 당신의 사랑 받는 자. 당신의 아들과 딸임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주님 앞에 구하는 첫번째 기도이고.
두번째 기도는. 오늘 우리가 그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주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해서.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먹고. 내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권리를. 악용하며. 횡포를 부리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빛의 자녀"로서. "또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있게 살아가면 좋겠다.

주님 오실 날을 부끄러워하고.
주님 오실 날을 두려워하고.
주님 오실 날을 민망히 여기는. 그런 어리석은 자녀의 모습 말고.
주님 오실 날을 기대하고 고대하는.
그런 주의 사랑받는 자녀로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길 소원한다.

"나의 소망 되신 주. 주를 바라봅니다.
다시 오실 나의 왕. 예수. 주를 기다립니다.
밤이나 낮이나. 어제나 오늘도. 영원히 주만 찬양해.
괴롭고 슬플 때. 낙망하여 넘어져도. 언제나 주만 찬양하겠네."

오늘 하루. 이 찬양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되길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밤이나 낮이나)

posted by The Sabb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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