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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7 :: 2024.10.17(목) 애 1:1-11
애 1:1-11
이스라엘이 멸망한 다음.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모습을 보며. 슬퍼하고 탄식한다.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던. 이스라엘의 영광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전에는. 사람이 많더니. 이제는 적막하게 되었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큰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하는 자가 되었으니.
그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고 안타깝게 느껴졌겠는가(1절).
근데 문제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친구들도 다 배신/배반하여 원수가 되었고(2절).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볼 때에. 그를 돕는 자가 없고.
오히려 대적들이 그의 멸망을 비웃고 있으니(7절).
어찌 소망이 있고. 감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염없이 울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으며.
절망 가운데. 또 탄식 가운데. 하나님 앞에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었다.
이방 사람들이. 주의 성소를 짓밟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저지/저항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형편이.
너무 무력하고. 안타깝게 느껴졌을 것이며.
그렇게 여호와의 전이 황폐화되고. 성전 기물이 뺏기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절망하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10절).
이게 다 다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죄" 때문이며(5절).
주께서 우리 가운데.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경고하셨지만.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의 죄가. 그렇게 많고. 심각했기 때문에(8절).
그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께서. 다윗에게.
"내가. 네 나라를 영원토록 하겠다"는 약속/말씀을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밥상을 걷어차고. 깽판을 놓았으니.
하나님 앞에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야말로. 유구무언.
입이 있으나. 할 말이 없었다.
이것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인.
그들의 형편. 그들의 삶의 처지였다.
근데 오늘 이 상황 속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한 마디의 기도를 내놓는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주님.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11절)"라는 기도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이스라엘이 심각한 죄를 저질렀으나.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비를 입고 은혜를 입기에는.
아무런 자격도 없고. 아무런 염치도 없는 자이지만.
주께서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지금 멸망하고.
사람들 앞에서. 조롱거리/비방거리가 되었지만.
주님 약속하신 것처럼. 70년 뒤에는 이스라엘을 다시 이 땅으로 보내달라는 기도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새롭게 되고. 거듭나기를.
누구보다 애타게/간절히.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느헤미야는. 정말 <눈물의 선지자>가 맞는 것 같다.
이스라엘의 반역함과 패역함을 보면서도.
계속해서 눈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고.
오늘. 이스라엘의 멸망과 무너짐을 보면서도.
게속해서. 눈물로. 하나님 앞에 탄식할 수밖에 없으니.
그가 어찌. <눈물의 선지자>가 아닐 수 있겠는가.
그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하염없이 눈물로/탄식함으로 기도하였고.
그 눈물은. 땅에 떨어져.
삭막하고 황폐한 땅을. 옥토로 바꾸는. 자양분/거름이 되었다.
예레미야의 기도. 예레미야의 삶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자비를 입고.
그분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도.
그와 같은 은혜.
그와 같은 눈물의 선지자가 있기를 원한다.
실제로 오늘 이 땅에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문제와 갈등들이.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탐욕. 인간의 죄 때문이다.
우리의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장벽이 생기게 되었고.
우리의 범죄함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싸움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의 범죄함으로.
땅이 우리에게 엉겅퀴를 내고. 가시를 내게 되었고.
우리의 범죄함으로.
이 땅이 황폐하고. 이상기온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우리의 범죄함으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긍휼이 끊기게 되었으며.
우리의 완악함과. 고집스러움 때문에.
주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지 않으시게 되었다.
교회가...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의 거룩함을 드러내야 할 곳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며. 그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곳이 되었으며.
우리의 완악함과 고집스러움 때문에.
예수님께서 욕을 먹으시고. 개독교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그러니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예레미야처럼.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죄를 자백/고백하는 것이며.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다.
<나는 비천하오나. 여호와는 나를 돌봐주시길> 간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비천하고 미련하오니.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길.
주님 앞에 간절히 무릎 꿇고. 또 마음을 다해 간구하는 것이다.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야 하며.
오늘 우리의. 삶의 형편과 처지를 돌아보아.
무너진 곳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과제/숙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이 아침에.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원한다.
"주여.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주여.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돌보시옵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기도를 우리 마음에 새기고. 삶에 새기는.
그런 하루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가운데. 자기의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형제자매의 허물을 들춰내고. 그들의 티를 발견하기 보다는.
나의 들보를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고 통곡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이 찬양의 고백으로. 그분 앞에 머물길 원한다.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내게 기도하며.
나의 얼굴을 구하여서. 그 악한 길 떠나며.
하늘에서 듣고. 죄를 사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아버지여 고쳐주소서. 이 나라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주 하나님. 간절히 기도하오니. 상한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 가운데.
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나의 백성이 다 겸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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