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8:18-23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함부로 머리를 깎진 않았다.
중요한 각오나. 결단이 있을 때. 그때 삭발식을 거행했다.
고대 근동지방에선. 더욱 그러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그 사람의 힘과 영광이 머리카락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사도 바울이. 머리를 깎았다.
단지 미용을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어떤 중요한 각오나 결단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으며.
성경 기자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성경을 아무리 뒤적여도. 구체적인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다만. 혼자 생각해 보면서. 2가지 이유를 추측해 본다.

하나는. 사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예수를 박해하며. 많은 사람을 옥에 가두고. 그들을 핍박했기에.
지나온 삶에 대한 회개와 반성의 의미로. 머리를 깎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의 종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단했던 것을.
이제서야. 머리를 깎으며.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로마 황제 앞에 서서. 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하나님께 서원/간구한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로마서 1장을 보면.
사도는 로마로 가기를 여러번 간절히 바랐지만. 그때마다 길이 막혔다.
더욱이. 로마로부터 가까운. 그리스 지역(빌립보, 고린도 등)에 머물면서.
그 마음의 소원은. 얼마나 더했을까?

그렇기에. 사도는 예루살렘/안디옥교회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를 깎으며.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렸을 것 같다.
"하나님. 제가 로마로 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로마 황제 앞에 서서. 그에게도 복음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7장을 볼 때.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행 27:24)"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추정일 뿐이다.^^
허나. 온 세상을 향한 사도의 열심. 복음의 열정을 확인케 된다.

에베소에 이르러.. 말씀을 가르치고.
얼마 안 되어. 갈라디아 지방을 다녀오고..
또. 부르기아 지방을 다니며. 신도들을 굳세게 하고..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든. 주님의 부르심과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도의 모습이. 실로 대단하기만 하다.ㅎ

오늘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떤 서원의 기도를 드리며 살아갈까?
오늘 내가.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히 11:1)"고 하였는데.
오늘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땅에. 불의가 그치고. 공의가 이뤄지며.
억압과 핍박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참된 자유와 평화가 선포되길 기도한다.
기도할뿐만 아니라. 소원하며 오늘 우리의 삶을 드린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는 그분의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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