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20-26
교회는. 폐쇄적인 곳이 되어선 안 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있으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의 부르심은. 세상과 절대 분리될 수 없다.
'우리끼리', '우리만의 리그'를 살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이 땅에 속하여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아니하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이 땅 가운데 전하고 뿌리내리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유업/사명인 것이다.
이 일에. 우리 주님이 본을 보이신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 사역을 앞두시고.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실 때.
당신의 제자들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마음에 품으시며.
그들을 위한 기도도. 함께 이어가셨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그들이 당신을 믿게 하여 주십시오.
서로 사랑하며. 이 땅 가운데 참된 자비와 평화가 임하게 하여 주십시오.
싸움과 다툼이 사라지며.
이 땅 가운데 부조리함과 불평등함의 역사가 끊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어놀고.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그런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측면에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참으로 크다.
"우리는. '나만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내가 받을 복과 평안'을 위해서만 기도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내가 속한 가족/내가 속한 공동체/우리 나라'만을 생각하며.
폐쇄적인 믿음. 이기적인 신앙으로 전락하지는 않는가?"
물론. '지금 내 코가 석자'라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형편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밖에 신경쓰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눈 앞에 보이는 일만 쫓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때로는 눈을 들어. 먼 곳을 살피기도 하고.
또 내 이웃의 형편을 돌아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주어진 삶.
성도의 역할과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따라. 이 땅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바라기는. 이 땅 가운데 진정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간절히 소원한다.
'하나님' 계시지 않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만을 소망하며.
이 땅 가운데 어떠한 소망도 두지 않는. 이분법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그런 주님의 백성/자녀가 되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그 크신 복이 이 땅 가운데 흘러가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주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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