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 12:1-15
사사 시대를. 대변하는 한 마디 말은.
"그 때에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
그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훨씬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1) 먼저. 입다가 암몬 사람들과 전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때 에브라임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길르앗 사람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암몬 자손을 치러갈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냐?"고.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온다.
근데 이 얘기를 듣는. 입다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다.
왜냐하면. 이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사람들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전령을 보내고. 우리를 도와달라고 할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왜 우리를 안 불렀냐고??"
이전에. 기드온 때도.
똑같은 이유로 시비를 걸고. 똑같은 이유로 싸움을 걸어오더니.
이번에도??
그런 측면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은. '관종'임에 틀림이 없다.
자기 없으면 안 되고. 자기 잘못을 돌아보지 않고.
늘 상전 대우를 받고. 늘 상전 노릇하고 싶은 사람들.
그게 어처구니 없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현 주소인 것이다.
2) 어이가 없는 것은. 입다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에브라임 사람들을 대하는. 입다의 모습이.
너무 폭력적이고. 너무 가학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입다가. 에브라임 사람들을. 4만 2천이나 죽였다고 하는데.
이게. 그렇게 잘못한 행동일까?
물론 에브라임 사람들이 먼저 시비를 걸고.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게 그렇게까지. 자기 민족끼리/자기 형제끼리. 그렇게 칼을 겨누고. 싸워야 할 문제일까?
쉽게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근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기에는. 입다 개인의 원한과 복수심이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성경 기자가 언급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그동안 에브라임 사람들이.
걸핏하면 길르앗 사람들을 무시하고. 조롱하였다고 말하지 않는가.
더욱이.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를 찾아오기 전에.
입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가?
자기 딸이. 제일 먼저 자기를 반기러 나옴에 따라.
이 딸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가뜩이나. 입다 입장에서는. 마음이 불편하고 뚜껑이 열린 상태였다.
근데. 이 상태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이.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냐?"고 시비를 걸어오니.
입다 입장에서는. '옳다쿠니' 했을 것이다.
그래서 입다는. 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살육하고. 도륙하였다.
가뜩이나 화가 나서. 누구한놈 걸리기만 해봐라라고. 마음에 칼을 품고 있었는데.
그게 에브라임 사람이라니.
그래서 입다는. 더욱 미친듯이 칼을 휘둘렀다.
개인의 원한과 분노를. 공적인 힘과 권한을 통해 사용하다니.
이것이 입다가 범한 실수. 그의 잘못인 것이다.
3) 근데. 공적인 권한을. 사사로이 남용하는 것은.
단지 입다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입다 다음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다와 같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다 다음으로 나오는. 사사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사 입산. 사사 엘론. 사사 압돈과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근데 재밌는 것은.
"이들이 사사가 되어.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기록은 나오는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는 기록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뭐 이런 이리 다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사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그 백성들을 건지기 원하셨는데.
이것이. 사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었는데.
이 역할과 책임을 망각하다니.
오히려. 사사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이것을 자신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자리로 사용하다니.
그런 측면에서. 사사는. 하나님이 보내신 재판관/의로운 지도자가 아니라.
탐관오리/악덕 업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공적인 권한과 지위를 악용하여.
자신의 배와 자리를 채우는. 나쁜 지도자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어리석은 백성들의 현주소"를.
어김 없이. 가차 없이 보여주고 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
그렇기에. 이 아침.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나아가길 소원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다"고 말하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같지 아니하고.
오직. 왕 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겸손히 돌아보고. 정직히 돌아볼 줄 아는.
그런 우리가 되길 소원하며.
이 시간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린다.
(feat. 주 발 앞에 무릎 꿇고(주의 옷자락 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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