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0:32-34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
제자들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칼을 갈고 있었는데.
우리 주님께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대 전승에 기록된 것처럼. 메시아의 나라가 오기 전에는.
아마겟돈/큰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날이 이날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예수의 제자라는 이유로. 우리도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주님은. 당신이 매를 맞고 능욕을 당할 것이라고 했는데.
왜 우리 주님은. 승산이 없는 게임을. 스스로 발 벗고 나서는 걸까?
이쯤되면.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진정시킬 법도 한데. 결코 그러질 않으신다.
오히려. 확인 사살을 하신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렇다.
"예수께서 앞장 서서 가시는데. 제자들은. 놀랐으며. 뒤따라가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곁에 불러 놓으시고.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일러주시기 시작하셨다.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이방 사람들은. 인자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참 잔인하지 않은가.
제자들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주어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잔인하게(?) 말씀하신단 말인가.
우리 주님은 T인가?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없는. 대문자 T! T자체인가?^^
그런 측면에서. 나는. 제자들의 마음이 십분 충분히 이해된다.
예수께서 아무리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그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앞에. "환난을 받고.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
<사흘 후>라는 말은. 멀리/먼 미래에 있는 일이고.
<지금 당장>은. 눈 앞에 있는 일이. 너무 커보이고 거대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두려운 마음으로. 쪼그라들고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주께서 우리 가운데. 구원/약속을 허락해 주시지만.
오늘 우리는. 눈 앞에 있는 일 때문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곤 한다.
왜냐하면. 구원/약속은 먼 미래의 일이고.
오늘 우리 눈 앞에 있는 일은. 지금 당장. 현실의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마음도 그렇다.
어제. 전주로 가는 이야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내 마음 가운데 얼마나 많은 감사와 기쁨이 있었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인 문제가 눈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사는 어떻게 하지? 사역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앞으로 감당하고 수고해야 할 짐은 무엇일까? 하는 등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이. 내 눈 앞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 사역을 전임으로. Full Time으로 감당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이 몰려오는 것도 사실이고.
후임 목사/동사 목사로서.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눈 앞에 다가오고. 현실적으로 부딪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이. 너무 공감되고. 헤아려지는 때에.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불안해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해야 할 일들을. 내가 생각나게 할 것이다.
네가 해야 할 말들을. 내가 생각나게 할 것이며.
네가 가야 할 길들을. 내가 보여줄 것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두려워할 때에.
우리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아주고 위로하였던 것처럼.
오늘 주님도. 우리에게. 그와 같이 말씀하신다.
모세가 바로 왕 앞에 서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할 때에.
"내가 너를 도와주고. 너희 할 일을 가르쳐 주겠다(출 4:15)"고 말하였던 것처럼.
오늘 주님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앞에 있는 말보다.
뒤에 있는 말이. 점점 더 크게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 주님이. 매를 맡고. 십자가에 달리고. 죽을 것이다"라는 말에 방점이 찍혔다면.
이제는 우리 주님이.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말에.
점점 더 포커스가 맺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 길이. 좁고 험한 길이라고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이 길이. 생명의 길/구원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고.
처음에는 이 길이. 알 수 없고. 막막한 길이라 생각되었다면.
이제는 이 길이. 주님이 인도하시고. 주님이 붙드시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아침.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마음 속에서 차오르는 것 같다.
주께서 말씀으로. 나를 위로해 주시고.
주께서 말씀으로. 나를 세워주시고.
주께서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께서 나를. 말씀으로 붙들어 주시니.
감사하고. 고맙고. 또 주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을 따라.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다.
오늘 우리 눈 앞에 있는. 현실과 불안함 속에서.
우리 마음이 주저앉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을.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는.
그런 하루.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 눈 앞에 놓여져 있는. 현실과 답답함 때문에.
우리가 침륜에 빠지고. 뒤로 물러서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약속의 날/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하루. 주께서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고 깨워주시는.
그런 하루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하루 우리가.
믿음으로 동역하고. 믿음으로 서로를 북돋아주는.
그런 우리 공동체.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따스한 성령님. 마음으로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만족함을 느끼네.
사랑과 진리의. 한 줄기 빛 보네.
내 몸을 감싸며. 주어지는 평안함. 그 사랑을 느끼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에서 예배하네.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그 곳에서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부르신 곳에서. 나는 예배하네.
어떤 상황에도. 나는 예배하네"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님 부르신 길에서. 주님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높이는. 그런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어떤 상황 속에도. 어떤 길에서도.
우리 주님을 높이며. 우리 주님을 붙드는.
그런 삶.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망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또 기쁨으로 살아가는 나와 우리 공동체 되길.
주님 앞에 간절히 소원한다.
(feat. 부르신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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