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5:1-18

시대가 불안할수록.
사람들은 자기를 붙잡아줄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인간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그렇게 많이 점 집을 찾는다고 한다.
선거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점집을 찾고. 무속신앙을 찾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항간에는. 목사님들도 교회를 개척할 때에. 점집을 찾는다고 한다.
교회 이름을 뭘로 하면 좋을지. 어느 곳에 교회를 세우면 좋을지.
점집을 찾고. 무당에게 그것을 물어본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그냥 우스갯 소리였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 너무 슬프고.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아니... 물을 때가 없어서. 점집에 가서 묻는단 말인가.

근데. 성경을 보면.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열왕기하 1장을 보면.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난간에서 떨어져.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의 신하들에게.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가서. 이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 이 소식을 들은 엘리야가. 펄쩍 뛰고 난리를 치는데.
엘리야는 아하시야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하느냐?
너는...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반드시 죽으리라(왕하 1:6)”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찾는 사람들의 말로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이 땅 가운데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이신데.
어찌 그 이름과. 다른 신들의 이름을 함께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매우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들의 이름을 파하시며. ‘진멸’하기를 원하신다.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그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원치 않으시며.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만 경외하며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십계명을 가르쳐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며.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
이것이 약속 있는 계명의. 제일 첫번째 명령과 두번째 명령이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오늘 본문 4절부터 7절까지를 보면.
우상의 특징/특성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들은 사람의 모습을 닮았고. 눈과 귀와 코와 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 시편 기자는. 우상을 들어. "못한다. 못한다"는 말을 7번이 반복하게 되는데.
실제로 성경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근데. 그것이 어찌 살아있는 신이 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사람이 만든 우상/형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이 온갖 정성과 예물을 드렸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금붙이/은붙이에 불과할 뿐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효험도 없고. 아무런 능력도 없다.
근데.. 뭐 한다고 거기에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단 말인가.

근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편 기자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화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오늘 본문 8절을 보면.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라고 얘기하는데.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지 않았는가.

예수님이 앞에 계시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예수님이 앞에서 말씀하시지만. 그의 말씀을 하나도 듣지도 못했고.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받고.
그를 바라바와 바꿔치기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럴 수 있는가?"하며.
통탄하며 소리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만들며.
그렇게 자기 생각과 자기 욕심과 자기 우상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리게 한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우상 더미와. 거짓 신들을 섬기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있는가.

나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한분만 섬기고. 그를 경외하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한분만 즐거워하고.
하나님 한분만 경외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방패가 되시고. 이스라엘의 도움"이 되셨던 것처럼.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고 도움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를 경외하며. 주께 순복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 주께서. 어두운 우리의 눈을 밝혀주는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주께서. 우리의 분별력과 지각과. 지혜를 깨워주시면 좋겠다.
오늘 우리가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께 복을 얻고. 주께 나음을 입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주와 동행하며. 주와 더불어 사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오 나의 맘을 주님께 열었으니.
주여 내게 오셔서. 내 맘에 거하여 주옵소서.
주가 기뻐하는. 주의 성전되게 하소서.

나의 맘 받으소서. 오셔서 주님의 처소 삼으소서.
나의 전부이신. 주여 내 맘을 받아주소서"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우리 안에 있는 우상과. 허물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경외하며.
오직 하나님 한분만 존귀히 여기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의 삶을. 겸손히 주께 의탁드린다.

(feat. 나의 맘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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