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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6 :: 2024.10.16(수) 막 12:41-44
막 12:41-44
오늘 본문은. 잘 아는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두 렙돈)을 헌금하고. 주님을 예배하는데.
이 모습을 우리 주님이. 칭찬(?)하는 것 처럼 말하고 있다.
부자들은.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떼어 헌금을 하였지만.
과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전재산을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본문을 볼 때마다.
과부의 믿음. 과부의 신앙을 칭찬하곤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당시. 과부들에게는.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없어.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그 재산을 대신 맡아주곤 했었는데.
사람들이. 그 재산을 잘 관리해 준 것이 아니라.
착복하고. 빼앗는 일들이 더러 있었다.
헌금은 얼마씩 하라고. 헌금 액수를 지정해 주기도 하고.
물건을 거래할 때에.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고.
그렇게 과부의 재산을 탐닉하고. 빼앗다가.
이제 과부의 손에는. 동전 두 닢. 두 렙돈 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참 슬픈 일이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보호하고. 돌봄받아야 할 사람이.
어찌 이리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는단 말인가.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우선적인 역할/의무인데.
어찌 그들을 괴롭히고. 등쳐먹을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은.
"칭찬"의 목소리를 넘어. "한탄"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부정과 거짓을 드러내신 것이며.
과부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과부의 마음을. 아무도 모르고.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우리 주님은. 그의 속사정을. 다 헤아려 보고 계셨고.
그의 눈물과 아픔의 기도를 받으면서.
동시에. 그를 위로하고. 그를 붙들어 주려 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헌금함에 돈을 넣은 사람 가운데.
이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
모두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떼어 넣었지만.
이 과부는 가난한 가운데서. 가진 것 모두. 곧 자기 생활비 전부를 털어 넣었다."
근데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이 과부의 믿음. 그의 속마음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실제로. 과부의 속사정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위험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를 돌봐주는 이 없는 것 같았고.
그는 철저히 외롭게.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과부가 그걸 몰랐을까?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탐닉하는 걸 몰랐을까?
자기 등골은 휘어져 가는데.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의. 등은. 따뜻해지고.
자신의 옷과 살림살이는 누추해져 가는데.
그들의 옷과 살림살이는. 더 화려해져 가고.
이런 상황 속에서. 과부가.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정말 몰랐을까?
아니다.
내 생각엔 알았을 것 같다.
알아도 너무 잘 알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 속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하나님을 저주(?)해도 모자랄 판에.
그는 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헌금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과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이 나를 속이고. 세상이 나를 해하려 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오늘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오늘 내가 해를 입는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억울한 일을 갚으시고.
주께서 모든 일을 드러내시고. 주께서 모든 일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이 있었던 것 같다.
마치.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 앞에 나아가.
계속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탄원하였던 것처럼.
오늘 이 과부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탄원하고. 간곡히 외쳤던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주님이.
"이 가난한 과부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단순히 그의 헌금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주님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진실한 믿음. 그의 진실한 소망을 보았으며.
그렇기에 주님은. 그를 칭찬하시고. 그의 믿음을 높이 사시는 게 아닌가 싶다.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우리 주님을 향한. 신실함을 잃지 않고.
주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주께서 우리의 아픔/고통을. 위로해주시고 탄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의 믿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아침 말씀을 보는데.
과부의 믿음 앞에. 오늘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과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오늘 우리는 어떠할까?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과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참담함을 고백하며.
눈물로서 자신의 삶을 아뢰고 있는데.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실한 믿음/절박한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상실과 배신감으로.
주를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주를 향한 원망과 상처로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나 원망하고. 불평하고. 쓴 소리를 내기는 쉽지만.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근데 우리 주님은. 그 상황 속에서.
모두가 가는. <넓고 편안한 길>로 가길 원치 않으시는 것 같고.
오늘 우리가. <좁고 험한 길>로 가길 원하시는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인생 길이. 좁고 험하다 하더라도.
그 길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시면.
그 길은. 생명의 길. 면류관의 길이 되는 것이며.
오늘 우리 인생 가운데. 그 길이 아무리 넓고 평탄하다 하더라도.
그 길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시지 않으시면.
그 길은. 사망의 길. 어둠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과부의 믿음을 배우고. 과부의 진실함을 따르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을 져버리지 않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 매달리고. 주님께 붙잡히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고. 그런 나의 삶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둠 가운데 빛이 더 빛나는.
그런 나와 우리 공동체 되었으면 좋겠고.
이물질을 품은 조개가. 그것을 진주로 바꾸고. 보석으로 바뀌는 것처럼.
오늘 주께서 우리 공동체의 삶을 그렇게 빚어주시고.
오늘 나의 삶을. 그렇게 빚어주시길 기도한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이 찬양의 고백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시리.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시리"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또 이 땅 가운데. 슬픔과 탄식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살아가는.
모든 자들 가운데.
주께서 은혜 주시고. 주께서 힘 주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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