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21:22-22:12
어려운 말씀이다. @.@
본문 전체가 정확히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인지.
앞 구절과 뒷 구절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주석을 찾아보아도. 명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말씀을 보며.
내 나름의 묵상을 나눠보려 한다.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습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생명/인권 감수성”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당신께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린 사람마저도.
새와 짐승들의 공격으로.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장례 절차를 명하시고.
길을 잃은 소와 양, 나귀까지도.
돌보고, 주인을 찾아줄 것을 명하신다.
어미새의 생명은 물론이며.
혹시 모를 낙상을 대비하여. 집을 지을 때 난관을 마련할 것까지.
하나님은. 세심하고.
생명을 돌보고자 하신다.
본문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은.
“진리와 타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다.
남여가 다른 이성의 옷을 입지 말고.
포도나무가 심겨진 밭에 다른 나무를 심지 말고.
서로 다른 소재로 한 옷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하시는 것은.
문자적으로 기록된 말씀 이면에.
혼합주의 사상을 배격하는.
“순수한(pure)” 믿음, 신앙을 요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옷에 술을 달아서.
구별된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원하신다.
어찌보면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고.
둘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 둘은 함께 가야한다.
자칫. 한쪽으로 치우쳐서. “균형”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심각한 오류”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생명 감수성, 인권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이 우위에 놓이게 되며.
질서와 규율만 논하다 보면.
사람(생명)은. 중요하지 않다.
사랑 없는 비판과 냉소, 살벌함만 따를 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사랑과 공의”
“정의와 평화”
“돌봄과 질서”가 함께 가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나와 우리 공동체는. 균형을 잡고 있을까?
한 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비난과 정죄가 아닌.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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