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3:16-32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으며.
아무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시오(빌 2:2-4)"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원리라 생각한다.

1)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마음과 한뜻을 가지며.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하며.

2) 다툼과 허영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며.

3)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봐주어.
① 참견하고. 간섭하라는 것이 아니다.
② 교만한 마음으로. 우월한 마음으로 내려다 보는 것도 아니다.
③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 나눠주라는 것이다.
④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달란트가 각기 다를 수 있고.
업무의 경중 또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다른 사람을 도와 주지만.
또 언젠가는.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세가지 원리가 적용되고. 실현 될 때.
하나님의 교회/공동체가 다시 세워지고. 회복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겸손이며.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이렇게 진행되었음을. 우리는 확인케 된다.
실제로. 그들은. 한가지 목표. 한가지 소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무너진 공동체의 기초를 다시 세우며.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것이다.

이 소망 가운데. 모든 사람이 참여하였다.
어제 말씀에서도 보았지만.
남여노소. 신분과 지위에 상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참여하였다.

성전 제사를 감당하는. '화이트 칼라'. 레위인과 제사장을 비롯하여.
성전 막일을 하는. '블루 칼라'. 일용직 노동자까지. 모두 함께 이 일에 참여하였다.
상인과 세공장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업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일에. 자진해서 참여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 모두의 소망. 그들 모두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수고를 자랑하며.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도리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였다.
성경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자기 구역, 자기 집, 자기 방 맞은 편을 보수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였고.
겸손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한 폭의 그림. 하나의 하모니가 완성되게 된 것이다.

기계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어제 살펴보았던 것처럼. '드고아 사람들(5절 27절)' 뿐만 아니라.
므게못과(4절, 21절), 므술람(4절, 30절)의 이름이 두번씩 등장한다.
무슨 말인가? 두번씩 수고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끝났음에도.
자진하여. 두번 수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52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성벽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느 6:15).
100년 넘게. 무너지고. 훼손되고. 방치되었던. 예수살렘 성벽이.
52일만에 재건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 동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한마음과 한 뜻으로. 즐겁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들이 One Team. 한몸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우면. 어떤 수고도 너끈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것이 괴로우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 맞지 않고. 우리의 관계가 깨어져 있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참 복이 많았던 것 같다.
함께 일하는 지체들에게. 너무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서서울 지방 간사회를 섬길 때.
30대 초반(5년차)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간사들은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함께. 즐겁게. 기쁘게. 섬길 수 있었다.
간사회를 갈 때면. 늘 즐거웠다.
이들과 함께 섬기고.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기쁨이 넘친다.
우리의 관계에. 사랑이 더했기 때문이다.

전북지방 간사회를 생각할 때도. 감사할 따름이다.
외부인/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밀어내지 않고.
사랑으로 나를 품어주었다.
새로운 변화와 많은 업무 속에서. 부담과 짐도 컸을텐데.
한번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따라주었다.
그렇게. 전북지방 ivf를 기쁘게 섬길 수 있었고.
우리는. 오늘의 열매/기쁨을 누리고 있다.
단지 사역의 열매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관계 안에서. 서로가 하나되고. 서로를 즐거워하는.
One Team.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IVF를 생각하면서도. 같은 마음을 갖는다.
자기 사역. 자기 지부. 자기 지방회를 넘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임을 기억하길 소망한다.
이것은. 당위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 자기를 내어주며. 누군가 먼저 자기를 허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마치 향유 옥합과 같다.
깨어진 향유 옥합을 통해서. 아름다운 향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나의 삶과 사역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봉인하고. 묵혀두는 것이 아니라. 깨지고 나눠지는 삶.
그렇게 우리 공동체가 다시 하나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뿐이다.
"주님. 저를 옥합으로 삼아주십시오."
"주님. 저를 깨뜨려 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깨뜨려 주시고. 주님. 우리를 새롭게 빚어주십시오."

그렇게. 주님 안에서. 다시 화평이 찾아올 날을 꿈꾼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날을 꿈꾸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한 가족으로 빚어지는. 그날을 꿈꾼다.

주님이 우리에게. 그날을 허락하시길.
믿음으로 간구하며. 소망으로 기도한다.


feat_1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feat_2 우리 오늘 눈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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