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4:1-5

성벽 재건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이 반대한다.
비난하고, 조롱하고, 멸시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산발랏과 도비야다.

산발랏은. '호론 사람'이라 기록하는 것을 보아.
예루살렘 인근 출신의. 유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버렸다.
이름을 '산발랏 - 달의 신, 'sin'이 내게 생명을 주었다'로 개명하였다.
바벨론/페르시아 제국의 임명을 받아. 사마리아 총독으로 재위하였다.
그러니. 이스라엘을 반대할 수밖에.
이스라엘 사람이. 성벽을 쌓는다는 소식에. 몹시 분개하며. 화를 낸다.
유대 사람을 비웃으며. "힘도 없는 것들이 무슨 일을 하냐"며.
"이 일이 가능키라도 하겠냐"며. 빈정거리며. 조롱한다.
이스라엘의 치부를 드러내며. 그들에게 수치와 모욕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암몬 사람 도비야'도. 그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그의 출신은. 이방 지역 암몬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선하시다'라는 뜻이다.
이를 볼 때. 그는. 유대교 신앙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여진다.
부모님 가운데 한 분이. 유대교 신앙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산발랏에게 빌붙어 있다(느 2:10).
산발랏의 심복이 되어. 산발랏의 비위를 맞추며. 그에게 동조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그가 암몬 지역을 관할하는 총독이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는 산발랏의 꼬붕이었고.
지금. 이스라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해.
명백히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아라비아 사람. '게셈'도. 그의 백성들을 부추겨. 이스라엘을 반대하며(느 2:19, 4:7).
이스라엘의 영원한 숙적. 블레셋 사람들도. '아스돗'에서 반기를 들고 있다(느 4:7).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다.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그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눈에 쌍심지를 키고. 그들을 집어 삼키려 한다.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이에.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할 따름이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우리의 업신여김을.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우리를 조롱하고. 비웃는 사람들의 욕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시며.
그들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못 본 척 하지 마십시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느 4:4-5)"


말씀을 읽으며. 오늘 우리의 처지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도 사방으로부터 우겨쌈을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당장에 사역의 길/활로가 보이지 않고.
반 기독교적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상황이다.
교회를 가는 것조차도. 사람들로부터 의심/비난의 눈초리를 받으며.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외부적인 요소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여러 어려운 일들이. 쌓여 있다.
이해 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여럿 존재하고.
그들은. 각기 다른 필요와 요구들을. 나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에게 무슨 기대. 어떤 소망이 있겠냐며. 낙심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나에게 이 어려움을 타개할 만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하면 좋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마음은.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님이 나에게 맡기셨으니. 내가 감당해야지.
아니. 주님이 나에게 맡기셨으니. 나에게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시겠지.
그리고. 그 주님을 붙잡고. 씨름 해야겠지.
"당신이 책임지시라고. 당신이 길을 보여주시라고.
당신이 필요한 것들을 채우시고. 당신이 우리를 돌봐주시라고"
그 주님을 붙들고. 그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지금은. 주님과 싸울 때지. 다른 사람과 싸울 때가 아니다.
주님과 씨름하고. 주님 안에서. 길을 찾아야지. 다른 사람들과 씨름하고. 다퉈선 안 될 일이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나에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 주시길 간구한다.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 요동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뿌리 깊은 믿음으로 살아가길 간구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영혼들을. 마음 다해 사랑하고. 섬기길 기도한다.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 내게 주신 역할과 책임이니까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박경리 선생님의 '들고양이'라는 글이.
오늘따라 유달리 더 생각난다.

"수삼 년 겨울이면.
뒷부엌에 연탄 피워주고. 국 끓여 밥 말아주었는데.
여남은 마리나 되는 들고양이들은.
나만 보면. 밥 먹다가도 달아난다.
'이놈의 짐승들아! 어찌 그리 은혜도 모르니' 하다가 웃었다
들고양이들은.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 그러는 것 같다."


그 주인의 넉넉함 마음이.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들고양이'처럼. 불안한 눈빛.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이. 우리의 진정한 주인장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주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길. 주님이 우리를 보듬어 주시길.
주께서. 우리에게. 피할 길을 내어주시며.
주님이. 우리를 살펴보지길"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주님과 씨름하러 나아간다.
우리가 붙잡고. 씨름할 분은. 오직 주님 한분밖에 없다.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느헤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9.10(목) 느 4:16-23  (0) 2020.09.10
2020.09.09(수) 느 4:6-15  (0) 2020.09.09
2020.09.05(토) 느 3:16-32  (0) 2020.09.05
2020.09.04(금) 느 3:1-15  (0) 2020.09.04
2020.09.03(목) 느 2:11-20  (0) 2020.09.03
posted by The Sabb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