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3:11-16
"처음"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와 같은 일을 했었다.
"첫번째 월급은. 전액 하나님께 헌금으로 드린다."
"첫번째 월급은. 전액 부모님께 선물로 드린다."
그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한 까닭은.
그간 부모님께/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부모님이/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이렇게 키워주셨는데.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감사하고 보답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행동/결정을 한 것이다.
근데. 이에 대한. 성경적 배경/적용의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아마 오늘 본문 말씀이. 그것에 대한 배경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오늘 본문을 보면.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태를 열고. 처음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근데. 성경 기자가 이와 같이 말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이. 당신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인도하여 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죽은 목숨이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애굽 사람들처럼. 모두 죽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야 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것을 기념하고 지키기 위해서.
초태생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게 된 것이다.
서원의 개념도 이와 같다.
한나가 아이가 없어. 매우 고통하며. 절규하고 있을 때.
"주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아이를 주신다면.
내가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하였었고.
마노아의 아내가. 아이가 없어. 탄식하며 슬퍼하고 있을 때.
"주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아이를 주신다면.
이 아이를 하나님께 바치고. 나실인으로 키우겠다"고 하였던 것처럼.
오늘 내게 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주님의 은혜/주님의 공로로 이뤄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첫번째. 첫번째 것을 구별하여 지킴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을. 이것을 통해 표하게 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첫번째. 초태생의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내 삶의 전부. 내 삶의 모두"를 드리겠다는 의미와 같다.
주께서. 내 삶에.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고.
이것이. 나의 공로. 나의 업적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신 선물. 주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 안에 이런 문화/전통의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고.
"굳이 그렇게까지 난리법석/요란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떤 의미인지 잘 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잘 알고.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정말 엄밀히 얘기해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안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내가 갖고 싶어서'. 그래서 그렇게 안 하는 것인가?
나는. 전자보다. 후자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간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댓가인데.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나눈다는 것이. 너무 아깝고. 또 속상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명분/이유'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실리'. 내것을 지키고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내가 얼마나 쌔빠지게 고생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 주고.
내가 얼마나 쌔빠지게 고생하고 수고했는데.
이것을 부모님께 주고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냐?"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감사'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착'하며. '인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내 삶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온. 주님의 선물/주님의 은혜인데.
나는. 이것에 대한. 나의 소유권/나의 주장을 요구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마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삶에 있는 모든 것이. 정말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며.
그분께 감사의 노래로. 감사의 고백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오늘 내가. 인색하게 살아가며. 아까워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라기는.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또 형제자매들 앞에서. 인색하고. 아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우리 공동체 되면 좋겠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이 찬양의 고백이. 내 마음 가운데 계속 흘러넘치는 것 같다.
"날이 저물어 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오늘 하루. 나와 우리 공동체가.
주께 아까워하지 않으며. 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우리 공동체 되길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주가 일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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