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2:37-42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들이. 라암셋을 떠나게 된다.
그간. 애굽으로부터 착취 당해서 라암셋을 짓게 되었다면.
이제 그 지긋지긋한 삶을 벗어던지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을 볼 때. 의미심장한 구절들이 참 많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처음 건너갈 때만 하더라도.
그들의 숫자가 70명 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들의 숫자가 60만명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고.
2) 그 무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 말고.
다른 여러 나라/민족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다.
아마 이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바로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날 때. 그 길에 동참하길 바랐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소원했던 것이다.
3)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주님의 군대>라고 표현하는 것도 놀랍고.
4)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신실하게 인도하셨던 것도 놀랍다.
실제로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이 무엇인가?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 15:13-14)"고 하지 않았던가.
근데. 오늘 그 약속이. 현실이 되고. 실제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반역하고 실패할 지라도.
주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성실하게/신실하게 지켜 오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이.
참 의미있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근데. 오늘 난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 42절 말씀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오늘 본문 42절을 보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면서 지켜 주셨으므로>.
그 밤은 <주님의 밤>이 되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밤새워 지켜야 하는 밤이 되었다."
참 인상적이지 않은가?
주님이. <밤을 새워> 그들을 지켜주셨다니 말이다.
죽음의 사신이. 애굽의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처음 난 것들의. 생명을 뺏어가며. 그들을 죽일 때.
하나님이. <밤을 새워>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고. 돌봐주셨다는 표현이.
참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본문은.
시편 121편 말씀과 일맥상통/연결 되는 것 같다.
실제로 시편 121편을 보면. 어떤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하는데.
그 다음 구절이 무엇인가?
"그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밤새. 우리를 지켜주시고. 밤새 우리를 돌봐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이 고백한다.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고백인가.
주께서.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고.
<밤새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실하게 우리를 돌봐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고백인가.
그렇기에. 성경 기자는.
"그 밤을. <주님의 밤>이라"고 말한다.
주께서. 낮에만.
사람들의 눈에 보일 때만.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낮이나 밤이나.
당신이 우리의 눈에 보일 때나. 보이지 않을 때나.
우리 주님은. <한결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아침. 당신의 말씀을 묵상하고 나아가는데.
내 마음 가운데. 감사의 고백이 피어나는 것 같다.
주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주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지.
주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살피시는지.
주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지.
그 사랑을 묵상하고. 기억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이 아침. 두 개의 찬양이. 내 마음 속에 떠오른다.
하나는.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시편 121편.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라는 찬양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옳은 길 따르라>라는 찬양이다.
실제로. 오늘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보면.
하나님의 임재가 보이지 않고.
오늘 우리 인생이. 어둡고 캄캄하게 보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때마다 낙심하고. 시험에 들 때가 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오늘 우리 인생이. 칠흙같은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고. 걱정되고. 위축들고. 주눅들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지 않을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밤을 새우면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이며.
우리 주님이. <낮에만>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밤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 주님은. 여전히 신실하게.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노래하고.
주님 안에서. 의와 평강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둔 밤 지나고. 통틀 것>을 고백하며.
우리 주님 안에서. 옳은 길. 의의 길을 걸으며.
그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올 것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에 확신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안에. 반듯이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믿음과 소망을 갖고 살아가길 기도한다.
우리가 누굴 따르겠는가.
우리가 누굴 믿겠는가.
우리가 누굴 바라보며. 우리가 누굴 소망하겠는가.
이 땅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분은.
오직. 우리 주님 한 분 뿐이시니.
오늘 우리가 그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오늘 내게 주어진 길을. 기쁨과 담대함으로 걸어가길 소원한다.
오늘 하루. 주께서 나와 우리 공동체 가운데.
옳은 길. 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힘과 용기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며.
오늘 하루를. 겸손히 주께 의탁한다.
(feat.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묵상_시냇가에 심은 나무 > 출애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02.22(수) 출 13:1-10 (0) | 2023.02.22 |
---|---|
2023.02.21(화) 출 12:43-51 (0) | 2023.02.21 |
2023.02.17(금) 출 12:29-36 (0) | 2023.02.17 |
2023.02.16(목) 출 12:21-28 (0) | 2023.02.16 |
2023.02.15(수) 출 12:15-20 (0) | 2023.02.15 |